나라는 플랫폼
스마트폰, SNS 여기 저기서 오픈 플랫폼이 화제이다. 오픈 플랫폼이 원할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수한 컨텐트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이 쉽고 원할한 인프라를 제공하여 좋은 컨텐트 개발자가 꾸역 꾸역 몰리게 하는 것이 큰 성공 용인이다. 그의 한 예로서 나라 = 오픈 플랫폼의 비유를 사용해보겠다.
춘추 전국 시대 초기에 위衛 나라의 군주였던 위 문후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인 자하에게 사사하여 학문을 읽혔고 재사들과 교류하며 견문과 안목을 넓혔다고 한다. 위 문후가 왕위를 승계하자 내정과 외교를 통해 국력을 쌓아갔는데 그가 특히 공을 들인 것이 인재의 등용이었다고 한다. 사람을 보는 눈이 예리하기도 했지만, 주위 인물 천거에 늘 귀를 기울이고 훌륭한 사람을 초빙하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면서 위나라에는 인재들이 모인다 – 그 중 한 사람이 훗날 손자병법과 더불어 2대 병법서라 불리우는 오자병법을 편찬한 오자였다. 문후는 50년간 재위하며 위나라를 전국칠웅의 으뜸으로 세웠는데 본인의 뛰어난 자질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들의 보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가장 잘해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삶에 훼방을 놓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직접적으로 컨텐트를 개발하기 보다는 인재들이 몰려들어 서로의 역량을 재보고 나라 안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한번즉 고려함즉이 어떠한지 지도자에게 묻고 싶다. 그게 정 싫으면 컨텐트 개발자가 되던가.
연극 “암실 속에서 대화”를 쓸 때 몇가지 염두에 두는 것:
#1
우선, 제목 “암실 속에서 대화” 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연극의 모티브를 얼마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된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에서 일부 가져왔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촉각, 청각에만 의지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다. 그 어둠 안에서 내가 얼마나 약하고옆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지만, 또한 손을 놓는 순간 한없이 혼자이며 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하지만 정적인 경험이다. 비슷한 경험으로는 얼마전 설악산에서 경험한 늦은 하산 길. 연극은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자 한다. “암실 속에서 대화 (dialogue in the dark room)”는 똑같이 어둠이지만 암실 –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 – 안에는 무엇을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사람의 눈은 밫의 최소 단위인 광자photon 4개만 있어도 이를 볼 수 있는 예민함을 갖췄는데 왜 요즘은 어둠을 강조하지? 이 기능을 살려서 뭔가 복 싶어하는 것이 주인공의 초기 심정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눈은 구조적으로 희망을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인공의 생각
-> to see; that I want.
#2
Diane Arbus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찍힌 대상의 흉직함이 놀라게 된다. 놀란 나머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린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사진을 빼꼼히 바라봐도 여전히 병신들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나조차 얼굴 넓어보일까봐 엄두 못내는 정면샷을 이 병신들은 서슴없이 찍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병신 소리를 들으면 눈쌀 찌푸리면서 “왜 굳이 그런 말을 사용하나요?” 라고 반문하겠지만 하지만 Diane Arbus는 자신이 병신을 찍었음을 똑똑히 상기 시켜준다. 심지어 병신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거쳤고 그 것을 살아남았기 때문에 ‘귀족’이라고 말하기조차 한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 나는 병신을 사진기 앞에 서달라고 설득시켰다. 당신은 과연 병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병신이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병신조차 제대로 바라볼 자신이 없다. 병신은 커녕, 우린 일상 속에서도 숨기에 급급하다. 어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장대한 광경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뭐라고 느껴야할 줄조차 모르기 때문에 이를 사진에 담는답시고 사진기 뒤로 숨는다. 뒤돌아서서 렌즈 탓이나 하면서 그 광경을 담을 수 없던 사진기를 탓하기도 한다. 단 한장의 사진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장벽이 느껴진다. 사진이란 세계의 일부를 독립적 객체로 떼어냈기 때문에 이러한 장벽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사진 찍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기조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 to see one must take a leap.
#3
human trafficking 산업은 수십조 단위의 거대한 산업이며 가장 급성장 중인 범죄이다. 남자의 predatory nature로 인해 신뢰를 잃었다. 또한, 일대일 관계에 있어서”이쁜 여자” 찾는 남자 특성상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큰 어려움에 도착한다. 만일, 남자가 여자를 못 잊을 경우, 그 동기가 이쁘고 젊은 여자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이런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밟아야 할 과정이 무엇일까?
오만 잡생각
#1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이직하기 전에 잠시 일주일정도 쉬면서 지친 몸을 재충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디 딱히 여행 갈 생각 아니거든 잔말 말고 출근해라’는 어머니 등쌀에 떠밀려 금요일 날 사퇴한 후 딱 이틀간 백수를 만끽하고 월요일에 다시 새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이게 왠걸, 월요일부터 회사의 20%가 신종 플루와 독감 기운으로 골골 거리기 시작하더니 목, 금요일 자택근무 선언. 이 것을 어머니의 선견지명으로 봐야할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아픈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 마냥 좋아할 상황은 분명 아닐터, 허나 모처럼의 4일 주말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픈 분들을 위해 잠시 기도.
#2
여자를 모니터로 밖에 만나볼 수 없는 덕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들어 덕후의 막장이라고 생각했던 미연시 덕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전 “편의점과 러브 플러스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외치는 덕후들을 보고 있으니 이 사람들 참 순수한 것 아닐까라는 느낌마저 든다. 게임 기획자가 준비한 멘트, 시나리오에 몰입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이 사람들이야 말로 여자들이 늘 찾는 감정이 풍부하고 공감해주는 남자들 아닐까? 하지만 현실에서 여자들은 덕후를 비웃는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소개팅 할 때 ‘덕후’ 단어를 나올 때마다 간지름 타듯이 뒤집혀 웃던 상대방이 기억난다. 약간 차가운 듯한 인상을 주는 분이였는데 웃을 때 모습이 연예인 흡사한게 너무 환하고 유쾌하게 웃길래 계속 웃겨보고 싶은 마음에 ‘덕후’ 소리를 열몇번은 한 것 같다. 나중에 그 분은 엎드려 웃기도 하고, 아예 정줄 놓으셔서 날 살짝 때리면서까지 웃더라. 그 날 소개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해보니 웃기느라 바쁜 나머지 정작 그 사람 성격, 생각을 읽어보지도 못한채 헤어졌구나… 하는 아쉬움을 남긴채 다시 돌아갔다.
#3
이야기가 재미 있어야 영화가 팔린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은바 있다. 하지만, 뮤지컬을7-8번씩 보는 여자 관객을 떠올려볼 때 다른 유형의 돈벌이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게끔 만드는것것보다 따라서, 한 사람이 영화를 여러번 보도록 만드려면 스토리 자체가 훌륭하기보다 몸매/외모가 훌륭한 사람을 띄우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역시 돈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재미 없어진다.
Gordon Lewis Pugh
Lewis Gordon Pugh: 환경 운동가이자 각종 장거리 수영 기록 보유자
- English Channel (대서양), 1992
- Spitsbergen 섬의 최북단 포인트 (the Arctic Ocean), 2005
- Deception Island의 Whaler’s Bay 횡단 (Southern Ocean), 2005
- Nelson Mandela Bay (인도양), 2006
- Manly Beach 부터 Sydney Opera House 까지 (태평양), 2006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알릴 목적으로 수온 영하 1.7도인 북극점에서 1km 수영. 걸린 시간은 총 18분 50초. (앞부분은 준비과정: 보기 귀찮으면 약 4:50부터 보면 됨)
당신은 나의 또 하나의 영웅.
그 사람의 홈페이지를 가보면
I don’t observe the Arctic from satellite images, or from the comfort of a boat. I get into the deadly cold water and ice. And from what I’ve experienced it is no longer simply about saving polar bears or eco-systems for future generations. It is about saving ourselves. With the current pace of sea ice melting, climate change threatens world peace, economic stability and our way of life across the globe. I don’t think this. I know this.
나는 북극을 위성 사진 또는 배 위에서 보는 사치를 누리며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북극의 차디찬 얼음과 물 속에 뛰어든다. 그 곳에서 경험한 것은 지구 온난화 문제가 단순히 북극곰을 구하고 후손을 위한 환경 생태계 보존과 같이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임을 알려줬다.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상의 변화는 세계의 평화, 경제적 안정, 그리고 지구촌 모두의 삶을 를 위협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머리 속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것들이 현실임을 알고 있다.
p.s. 영상 음악 죽이지 않아?
p.s. 2 리얼리티 쇼랑 차원이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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