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idea, taken seriously

Protected: [습작] 사회 초년생의 죽음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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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습작] 베드로의 3번 부인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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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text] eclipse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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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style] literature on war, part 2

Posted in fashion fades, style eternal by bebe on October 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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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play] what happened to Hamlet

Posted in plays by bebe on October 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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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습작] hitchhiker’s guide to marriage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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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역설의 설법

Posted in fashion fades, style eternal by bebe on September 6, 2009

소수가 무한개 있다는 유클리드의 증명은 결과 자체도 중요하지만 증명하는 방식면에 있어서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바둑을 둘 때 실리를 내주면서 세력을 취하거나 일대일로 싸울 때 상대방에게 때 팔을 내주고 몸통을 취하는 식의 모종의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클리드의 증명은 단순히 팔을 내주는 수준이 아니라 증명 전체를 포기함으로서 되려 증명 전부 (소수가 무한하다는 것) 를 얻는 역설적 증명법이다. 유클리드 증명처럼 삶 가운데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서 모든 것을 되려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겁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흔히 fuck the truth! 외치며 마치 낭만적 개인을 꿈꾸지만 the truth fucks you. 그렇다면 유클리드의 증명법 – 역설을 통한 설법 – 은 과연 수학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우리를 거침없이, 빠짐없이 짓밟는 거대한 힘은 – the truth that fucks us -기억이다. 살아가면서 우리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보다 과거의 연장선으로서 마지못해 움직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녀가 했던 말, 풋내같은 비린내를 싫어했던 사소한 기억들이 마치 담쟁이 덩굴처럼 나의 의식을 칭칭 감고 속삭인다.  나는 기억이란 대본에 따라 움직이고 말한다. 하지만 Shakespeare 왈,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그러나 Shakespeare의 남자와 여자는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무대 위에 올라선다. 대본을 충실히 따르고 순종하면서 Shakespeare가 보여주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과 달리 일상속의 우리는 끊임없이 불순종하며 죄스러운 존재다.  우리는 본인 스스로 대본에 따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지레 겁먹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럼과 동시에 자신의 옛모습을 의식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딱 떨쳐놓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가 없는 두가지 함정에 빠져있다.

연극 Hamlet의 비극은 주인공이 맞이한 결말: 아버지의 복수를 뒤이은 덴마크 왕족 몰살에 있지 않다. Hamlet의 비극은 자신을 분리하여 숨기면서 연극(기억)해야 하는 현대인 그 자체이다. 예전에는 자신만의 성 안에서 꼴리는 대로 살 수 있었건만, 왕정시대 이후로 예절, 법규에 의해서 자신을 분리하며 숨기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며 가슴 찢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Hamlet이 부왕의 유령을 만난 그 날 밤을 기억하기 때문이며 왕자로서 자신이 할 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때로는 기생체와 같이 숙주의 수명을 갉아먹기도 한다. 기억이 Hamlet마저 자멸 시켰는데 두가지 함정 파놓은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봐도 자명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는 [누구 또는 대상]을 기억한다’ –> ‘나는 [누구 또는 대상 ]을 기억하는 나를 연기한다’로 진화를 꾀한다. 그리고는 나의 기억을 노래에, 단어에,  사물에 저장한다. 투영 시키는 과정에서 사물을 사물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왜곡하고 사물에 내 기억이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 (또는 망각하는지) 테스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경제적, 문화적 조건에 의해서 잘려나간다. 모든 것을 영원히 저장할 수 없고, 사회적 풍조상 [누구 또는 대상 ]을 계속 기억하는 것이 금지될 수 있다. 결국 남게 되는 기억 방법은: ‘나는 [누구 또는 대상]을 기억한다’ –> ‘나는 [누구 또는 대상]을 재현/흉내낸다’ 만이 남는다.  즉,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함수인 기억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완전 없앰으로서 그 사람을 온전하게 기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These items, these items that constitute you – each items hold partial memory of you -are reconstructed into one piece. I wish to be the glove that keeps your hands close; I wish to be the music that you so love; I wish to be the play that you can laugh at when you’re disinterested in life; I wish to be someone close, rather than a pennyless writer. All these years, i have kept these things from you – I’ve held them in my memory, in my possession because they are the only remaining of the past but now I return them because I am these things and to be you is to return what belongs to you for they never were mine. I return my feeling that is burning in me; never was mine but yours for had it not been you it would never have capsized me. I remember you not in the light of wonderful and yet, distant past in a period of infatuation but I remember by acting you, by being you.

Solar eclipse – I have not been able to see you because of the sun and instead, I take my place between you and the sun; I won’t see you but just as sterling doesn’t need to be tested for its silver, I don’t have to see you. I love you by being you.

p.s.

베드로의 실패.

[premise] acting naturally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August 17, 2009

사랑을 잃은 이가 마치 쥐어짜 버려진 레몬처럼 느껴질 때 – 이는 그가 노틀담의 꼽추와 같은 퇴보 유전자이기 때문에 감정이 남아있는것일까? 아님 사랑의 본질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지적 미숙함으로 인한 오해일까? 둘 중 어떤 시나리오를 생각해봐도 그는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는) 자연주의자가 될 수 없다.

자연주의의 목적은 지구상에서 번영하는데 있다. 즉, 강한 유전자를 전할 수 있는, 필요 이상의 감정 이입을 범하지 않는, 이성적으로 무결함적인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만을 그린다.  만일 Naturalistic Aptitude Test가 있다면 여지없이 3대 안에 도태될 유전자인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August Strindberg의 Miss Julie는 이렇게 도태될, 그래서 삶 자체가 고통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degenrate 인물의 추락을 다뤘다. 허나 Miss Julie는 명예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귀족가문의 딸이기 때문에 추락을 견디기보다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 – 마치 일본 무사가 할복하듯이 – 하였다.

그럼 명예가 없는 그는 어떤 입장인지? 자연주의 – 진화론에 의해 도태될 나는 degenerate임이 틀림없지만 (자만할지언정) 명예와 자존심은없기 때문에 Miss Julie처럼 자살을 택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남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만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세속적) 상승을 꿈꾸기 때문에 자연주의적 역할을 연기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낭만주의, 댄디즘 등등 기타 xx주의와 달리 살을 붙이기 보다 뼈를 드러내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기할 수 없다. 마치 마른 사람에게 옷을 많이 입혀서 뚱뚱한 사람을 연기하도록 할 수 있겠지만, 뚱뚱한 사람에게 마른 사람을 연기하라고 할 수 없듯이 자연주의는 연기될 수 없다; 자연주의에 철저히 입각하지 않는 이상 그들과 같이 쿨해질 수 없다; 시크하지만 내 여자에게 따스한 도시 남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연기하기 때문에 – 모든 배우가 대사를 외우고 기억 속에서 고통에 가득한 사람의 표정을 기억해내 얼굴로 끄집어내야하듯이 – 기억에 종속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필히 그를 배반한다. 기억력 자체가 그리 믿을만한 – 가물가물할 뿐더러 왜곡마저 가능한 – 기억을 통해서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사랑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음 단계를 밟고 나설 수 밖에 없다. 다음 단계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흔히들 이를 택한다) 그럴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저 대상이 바뀔 뿐, 과정에 있어 반복이고 이는 상승을 꿈꾸는 그로서 택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어느 순간이 온다: 행운에 의지하여 (행운에는 나로서 주체가 취하는 행동도, 연기도  없다; 애초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이란 해처럼 그가 직접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햇빛이 비추는 물체들을 봄으로서 해가 있다는 것을 믿을 뿐이다. 그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믿고 그로 인해 보게 된다; 실체를 못봐서 믿음 아래 모든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행동한다; 남에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는 액션을 통해서 불가능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행동한다. 댓가성 액션을 계산하고 취하는 행동은 진화론적 쳇바퀴에 자기 자신을 던져 넣는 꼴일 뿐이다. 어느덧 온갖 배경과 소품이 갖춰진 무대 위의 – 기억력 토대로 이뤄지는 – 연기는 끝나고 조건 없이 황량한 무대 위에서 그 혼자만이 반복하며 영원을 바라보는 사랑만이 남을 뿐.

Beethoven 9th symphony 3rd movement: half lover’s lament, half prayer.

[premise] 연극, 참여, 무사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July 23, 2009

All the world's a stage (from As You Like It 2/7)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 At first the infant, Mewling and puking in the nurse's arms. And then the whining school-boy, with his satchel And shining morning face, creeping like snail Unwillingly to school. And then the lover, Sighing like furnace, with a woeful ballad Made to his mistress' eyebrow. Then a soldier, Full of strange oaths and bearded like the pard, Jealous in honour, sudden and quick in quarrel, Seeking the bubble reputation Even in the cannon's mouth. And then the justice, In fair round belly with good capon lined, With eyes severe and beard of formal cut, Full of wise saws and modern instances; And so he plays his part. The sixth age shifts Into the lean and slipper'd pantaloon, With spectacles on nose and pouch on side, His youthful hose, well saved, a world too wide For his shrunk shank; and his big manly voice, Turning again toward childish treble, pipes And whistles in his sound. Last scene of all, That ends this strange eventful history, Is second childishness and mere oblivion, Sans teeth, sans eyes, sans taste, sans everything.

셰익스피어는 우리 삶 자체가 연극이라고 그래서 우리 모두 각자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맞는 역할을 맡은 배우라고  말한다. 햄릿은 아버지 원수를 갚는 과정에 두 가족 – 클로디어스의 왕가와 폴로니어스의 가문 – 송두리 박살낸 비극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 – 자신만의 성 안에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방종하던 과거와 달리 궁정에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예의범절을 지키고 끊임없이 남을 속여야 하는, 다른 말로 독을 품어야 하는 지금 – 에서 고뇌하고 연극해야만 하는 원치 않는 배우의 길을 걷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다룬 연극이다.

흔히 말하길, 연극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표현한다고 말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면서 연기가 비로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즉, 우리는 여태까지 남의 표정과 습관을 잘 관찰하는데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의 재현하는 모습을 연기라고 생각했건만 셰익스피어는 추악하고 소심한 사람들이 남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모습 자체가 ‘연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세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클로디어스야 양심에 찔리니 햄릿을 지켜보았지만 폴로니어스는 원한 관계에 얽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간섭하는 버릇으로 햄릿을 방해한다. 굳이 칼부림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방해 받는다. 사탄은 본래 “방해하는 자”라는 모호한 의미를 지녔으나 이를 좀 더 이해에 돕기 위해서 하나의 객체로 형상화한다. 어떠한 길을 택하든 필히 이를 방해하는 존재는 있기 마련이다.

그 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 시키고, 차별화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참여하지만 이는 “연기”다. 이러한 연기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나에 대한 기억이 뒤바뀌며 겹겹히 쌓여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방해 받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라; 연기를 그만두자. 내가 느끼는 감정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연극으로 담아내자.

자 – 2년에 걸친 작업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Memory and action

Posted in fashion fades, style eternal by bebe on July 20, 2009

동생에게 살해당한 햄릿의 아버지 유령이 복수를 요구하면서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자 햄릿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는다.

Remember thee?

Ay, thou poor ghost, while memory holds a seat

In this dsitracted globe. Remember thee?

Yea, from the table of my memory

I’ll wipe away all trivial fond records,

All saws of books, all forms, all pressure past,

That youth and observation copied there,

And thy commandment all alone shall live

Within the book and volume of my brain

Unmixed with baser matter.

(Hamlet, 1.5.95-104)

중세 시대에 성행하던 믿음 중 하나가 세계의 모든 기억이 한 곳에 저장된다는 것이였다. 처음 읽을 때는 무척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비웃었지만 막상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USB 혹은 백업 디스크에 저장하고 핸드폰 단축키는 기억할지언정 전화번호는 기억 못하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아주 틀린 얘기도 아닌듯. 당시 정황이 글, 인쇄술이 흔하지 않아서였는지 혹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다루는데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을 어느 물리적 장소에 저장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경과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Giotto 조또;; 종탑이 그러한 ‘하드 드라이브’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 진지하게 믿었던 듯 싶다.

셰익스피어도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위의 대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memory holds a seat in this distracted globe.”라 할 때 globe는 두뇌를 가르키므로 뇌 구석탱이에 고이 간직하겠다는 말도 되지만, 당시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연출되던 극장 이름이 Globe였음을 떠올리면 “얼래? 이거봐라?” 소리 나오게 되는 것이지. 즉, 연극이 진행되는 Globe라는 물리적 장소 안의 자리seat에 앉은 관객에 의해서 메세지/기억은 전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물리적 장소를 통해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햄릿의 믿음은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나타난다. 숙부인 클로디어스 앞에서 부왕이 살인 당하는 장면을 연극으로 재현함으로서 숙부의 기억을 되살리려 했던 장면 – 숙부의 얼굴 표정을 읽고 복수를 확신하는 장면 – 도 이에 해당된다.

기억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끌리고, 행동이 어떤식으로 기억에 남게 되는지는 한번쯤 누구나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래선지 일찍이 어린 아들을 잃고 – 아들 이름이 Hamnet이며 Hamlet 쓰기 3~4년전에 죽었다 –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필히 괴로했을 셰익스피어가 연극을 통해 담아낸 기억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p.s.

근데 조낸 비싸 아흙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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