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다음에서 퍼옴: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http://www.youtube.com/watch?v=XpaOjMXyJGk&feature=youtu.be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방금 알게 된 Dove의 광고캠페인이다. 지금 보고 나서 그 훌륭한 메시지에 감탄했다.

경찰에서 오래 근무했던 몽타주 전문가가 한 여성의 자신의 용모에 대한 묘사를 듣고 (실제로 보지 않고) 스케치를 한다. 그런 다음에 방금 몽타주를 그렸던 그 같은 여성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묘사를 듣고 또 하나의 스케치를 그린다. 그리고 그 본인과 함께 두개의 그림을 비교해 본다.

놀랍게도 어느 그림이나 자신이 묘사한 자신의 모습보다 다른 사람이 묘사한 자신이 모습이 휠씬 나아보인다.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say. 좋은 말씀 담아갑니다.

Polaroid's SX-70: The Art and Science of the Nearly Impossible

다음에서 퍼옴: Technologizer: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 클릭하여 원본 글로 가기

What makes a gadget great? You might argue that it's determined at least in part by how many lives the product in question touches. Back in 2005, when I helped choose a list of the fifty greatest gadgets of the past fifty years, we ranked the Sony Walkman as #1 and Apple's iPod as #2. Fabulous gizmos both; I suspect, however, that they wouldn't have topped the list if they hadn't been bestsellers of epic proportions.

더 보기… 14,075단어 남음, 6 more videos

판단할 때

“여기 에스프레소 깔끔하다. 근데 영하씨는 판단할 때 주로 무엇에 의지하세요?”

“판단이라뇨?”

“저 같은 경우 직감에 의존하는 편이에요.  영하씨는 왠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 같은데?”

“네, 그런 것 같긴 해요. 근데 xx씨는 직감이라니, 무슨 얘기에요?”

“직감? 뭐… 예를 들어서… ” 직감이 뭐냐고 묻는 황당한 상황을 정리하느라 잠시 시간을 둔 그녀 왈, “배운거, 공식이 A가 옳다 말해도 왠지 느낌이 B를 택하라고 말해주면 B를 택한다는 얘기죠”

“아 – 그런데 그건 선택이라기 보다는 반응에 가깝지 않나요? 불에 데여서 아야! 소리 내는 것처럼?”

“아. 여기 혹시 리필 되나 보고 올게요.”

흥겨운 음악과 따스한 밤 공기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말해줄 것만 같던 그날 밤, 만난지 3분만에 포항에서 고등학교 나온 xx씨와 서로 아는 친구가 있음을 발견하면서 참 좁은 세상임을 신기해하고 살짝 날 만지기도 하면서 웃던 그녀, 한마디로 모든게 순조롭던 소개팅호는 위에 기록된 교신 이후 얼마 안가 침몰했다. 이 에피소드를 친구에게 말했더니 내가 마음 속으로 xx와 소개팅 망하길 간절히 원했더라도 저보다 확실하게 그리고 병신같이 쫑낼 수는 없었다고 평했다. Chris Rock 왈, 여자가 (순한 표현으로) 남자를 좋아하게 될지 안될지 판단하는데 불과 5분채 안 걸린다고 한다. 그 5분 안에 멍청한 소리만 안하면 되는데 난 5분을 못 버틴 셈이다.

삶은 판단과 판단으로 이뤄졌다. 첫번째 판단은 쉬운 판단들이다. 예를 들어 303승 투수 랜디 존슨과 눈싸움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요즘도 야동 보냐고 캐묻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포항공대와 카이스트 둘 중 어느 곳을 지원할까? 이런 경우 답이 명쾌해서 길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 이런 질문에 관한 마음의 소리 따위 없다 – 판단이다.

두번째 판단은 본인이 좀처럼 확신 가질 수 없는 판단이다.  12년전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으로 입사해도 될까?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올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 둘 중 하나 뽑으라면 누가 차악의 선택일까? 나의 평생 동반자로서 과연 X가 최선인가? 확실한가? 이들의 공통점은 답을 알 수 없지만, 선택한 후 그 선택이 옳았음을 자신을 포함한 남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입사자, 투표자, 그리고 남편으로서 기다림, 노력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옳은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린 판단을 옳게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성패가 갈린다.

얼마전 생애 첫 에스프레소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당시 그녀의 질문, 그리고 나의 답변 떠올랐다. 그녀가 옳았다. 그녀는 무엇이 판단이고 무엇은 판단이지 구분할 줄 알았다. 숫자 놀음, MECE한 시나리오 플래닝이 답을 가르쳐준다면 그 것은 애초에 판단이라 할 필요 조차 없는, 상황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당시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른채, 나의 샤프함을 강조한답시고 멍청한 소리나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나의 애프터 신청에 “제가 요즘 좀 바빠서요”라는 신속한 반응을 보여줬다.

연극 “암실 속에서 대화”를 쓸 때 몇가지 염두에 두는 것:

#1

우선, 제목 “암실 속에서 대화” 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연극의 모티브를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되었뜬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에서 일부 가져왔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촉각, 청각에만 의지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다. 그 어둠 안에서 내가 얼마나 약하고옆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지만, 또한 손을 놓는 순간 한없이 혼자이며 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하지만 정적인 경험이다.

암실 속에서 대화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자 한다. 똑같은 어둠일지라도 암실 – 이 곳의 암실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 – 안에는 무엇을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사람의 눈은 밫의 최소 단위인 광자 photon 4개만 있어도 이를 볼 수 있는 예민함을 갖췄기 때문이다.

-> to see; that of which I want.

#2

Diane Arbus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찍힌 대상의 흉직함이 놀라게 된다. Diane Arbus는 이들을 보면서 freak 즉, 병신이라 서슴치 않게 말한다. 놀란 나머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린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사진을 빼꼼히 바라봐도 여전히 병신들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나조차 얼굴 넓어보일까봐 엄두 못내는 정면샷을 이 병신들은 서슴없이 찍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병신 소리를 들으면 눈쌀 찌푸리면서 “왜 굳이 그런 말을 사용하나요?” 라고 반문하겠지만 하지만 Diane Arbus는 자신이 병신을 찍었음을 똑똑히 상기 시켜준다. 심지어 병신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거쳤고 그 것을 살아남았기 때문에 ‘귀족’이라고 말하기조차 한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 나는 병신을 사진기 앞에 서달라고 설득시켰다. 당신은 과연 병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병신이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병신을 보고 병신이라 말할 용기조차 없다. 그 것이 그들을 비하하는 이유라던가, 혹은 그 들을 쳐다보기에는 심성이 너무 약하던가 어떤 이유라든가 말야.  아니, 병신은 커녕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장대한 광경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뭐라고 느껴야할 줄조차 모르기 때문에 사진에 담는답시고 사진기 뒤로 숨는다.  뒤돌아서서 렌즈 탓이나 하면서 파노라마를 찍을 수 없는 똑딱이 사진기 탓을 하기도 한다.

단 한장의 사진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장벽이 느껴진다.  사진이란 세계의 일부를 독립적 객체로 떼어냈기 때문에 이러한 장벽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사진 찍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기조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 to see one must take a leap.

연극이 일어나는 장소

뛰어난 장소를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이미 연극 작품을 다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 말할 수 있다. 단, 쓰기 전에 앞서 몇가지 원칙이 있다. 예를 들어서 일상 회화에서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일부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대원칙이 있다. 따라서, 아이가 “아빠, 지금 무슨 일을 하시죠?” 라고 묻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극작가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일반 회화를 통해 전달할 수 없으며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좀처럼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도로나 광장이란 공공의 공간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기 때문에 회화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워진다. 두 연인이 영화 극장 안에서 친밀한 얘기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무대란 사적이면서 공적인 즉, 두 공간이 절충된 공간 – 반공반사- 일 필요가 있다.  즉, 외부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내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열어야 한다.

현재 “암실 속의 대화”는 암실과 거실, 2개의 공간으로 이뤄진다. 아직도 처음으로 암실에 들어갔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나는 대학 입학을 일찍이 결정 지어둔 상태라 남들 한창 고3 공부할 때 스페인어 초급, 사진 같은 ‘널널한’ 수업을 듣던 때였다. 처음 암실에 들어설 때 풍겨오는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에 ‘내가 남들 공부할 때 처놀면서 암거나 들쑤시고 다니니까 이 곳에서 벌을 받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랬을 뿐, 나중에는 몇시간이고 암실에서 일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나만의 공간 안에서 시간조차 잊고 일할 수 있던 것이 너무 좋았다. 하루는 세상의 빛과 차단되어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던 기억도 난다.

암실에 들어가면 사진 현상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준비 다 해놓은 상태에서 현상하기까지 약 10-15분정도 걸린다 ) 암실은 나만의 공간이다. 대부분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암실 안에서 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지만, 내 머리속은 어느 때보다 대화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 사진(recollection)과 내가 만들어내는 기억(remembrance)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부분적으로 익숙한 상대끼리 대화를 나눌 경우 마치 twitter처럼 별 내용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인도적 사진을 찍기 위해 인도에 간 사진작가 마냥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거창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아- 좀 더 다른 각도로 잡았아야 할텐데…” 후회하기도 한다.

실로 다이나믹한 공간이였다.

무엇이 중요한가

연극 무대 위에서 극작가가 묻고 행동으로서 대답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질문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햄릿의 결정적 질문은 “과연 햄릿이 클로디어스 왕을 죽일 것인가?”이며 답은 “죽인다”이다.  그 외 내용,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최초로 우울증 혹은 정신분열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시달린 사람 등등 온갖 해석은 (햄릿을 완성한 후, 셰익스피어가 “실은 내가 말야… xx를 표현하고 싶었어” 라고 인터뷰한 적도 없고 일기장에 끄적여놓은 것도 없으니) 사람들의 추측일 뿐이다. 따라서 연극을 보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과연 햄릿이 클로디어스 왕을 죽일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이를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풀어나갔는지에 집중을 해야한다.

나는 비극을 좋아한다: 비극이 시작할 때는 산 꼭대기에 눈덩이가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한다. Act 5로 이뤄진 연극이라면 Act 1, 2 끝날 때 쯤되면 산 밑에 사는 평화로운 시민들이 어떻게 깔아뭉개질 것인지에 대해 스케치가 여러장 그려진다. Act 3가 끝날 때 쯤 되면, 커텐 뒤에 숨은 폴로니우스을 찔러죽인 후 자신의 복수가 성공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듯이 깊은 탄식을 내쉬며 “(내가) 영국에 가게 되었구나” 뱉을 타이밍이 되었고 이 때부터 연극은 단 하나의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인간에 다양한 면을 예리하게 파헤칠 수 있어서 난 좋다.

반면,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기어코 찾어내는 코메디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질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코메디는 삶을 똑바로 바라보기 보다는 관조적 입장을 취하면 취할수록 터득하게 되는 삶의 비밀이라고나 할까? 삶과 삶의 비밀, 이 두가지를 양손에 쥐면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참 시야도 폭 넓고 깊어질 것 같은데 그게 쉽지는 않다.

연극입문 – 1장: 연극의 리얼과 현실의 리얼

<도교 노트>를 쓴 히라타 오리자씨의 ‘연극 입문: 희곡, 어떻게 쓸 것인가’를 조금씩 옮겨볼 생각.

—-

1장: 연극의 리얼과 현실의 리얼

대사를 쓸 때는 먼 이미지부터 접근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서 미술관을 무대로 하는 설정을 놓고 “아, 미술관이 참 좋다” 라고 설명부터 툭 까버리는 것은 재미가 없다. 왜냐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라는 기대가 단번에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키 위해서 미술관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나열해본다:

  • 그림이 있다
  • 조용하다
  • 데이트하기 좋다
  • 고상한 분위기다
  • 미대생이 스케치를 하고 있다
  •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 미술관이다
  • 하얀 (혹은 안정감이 있는 색의) 벽이다
  • 의자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감시원이 있다 등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떠올린 리스트를 ‘먼’ 이미지부터 접근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조용하다
  • 데이트하기 좋다
  • 고상한 분위기다
  •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 그림이 잇다.
  • 하얀 (혹은 안정감 있는 색상의) 벽이다.
  • 미대생이 스케치를 하고 있다.
  • 의자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감시원이 있다.
  • 미술관이다.

그리고는 이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다.

————–

여자: 좋지, 가끔은 이런 곳도.

남자: 그래.

여자: 때로는 여유를 가져야지.

남자: 응.

(…)

여자: 조금만 천천히 걸어.

남자: 아, 미안.

여자: 나까지 초조해지잖아.

남자: 미안, 미안.

(슬슬 그림 이야기를 시작)

여자: 조금 전에 본 그림, 생각보다 크더라.

남자: 응, 어쩐지 교과서에서 보는 거랑 많이 다르던데.

여자: 역시 그림은 진품을 봐야해.

(만일 전개가 성급하다 싶으면, 화가 관련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남자: 고흐는 안장다리였다고 하던데.

여자: 고갱은 평발이었대.

(여기까지 진행되면 다음은)

남자: 역시 미술관은 정말 좋아.

여자: 그렇지! 오길 잘했지!

————–

이제는 대사가 설명적이지 않으며 무대가 자연스레 시작한다. 희곡을 쓴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을 길게 써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공의 세계를 구축하는 행위다.

나라는 플랫폼

스마트폰, SNS 여기 저기서 오픈 플랫폼이 화제이다. 오픈 플랫폼이 원할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수한 컨텐트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이 쉽고 원할한 인프라를 제공하여 좋은 컨텐트 개발자가 꾸역 꾸역 몰리게 하는 것이 큰 성공 용인이다.  그의 한 예로서 나라 = 오픈 플랫폼의 비유를 사용해보겠다.

춘추 전국 시대 초기에 위衛 나라의 군주였던 위 문후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인 자하에게 사사하여 학문을 읽혔고 재사들과 교류하며 견문과 안목을 넓혔다고 한다.  위 문후가 왕위를 승계하자 내정과 외교를 통해 국력을 쌓아갔는데 그가 특히 공을 들인 것이 인재의 등용이었다고 한다. 사람을 보는 눈이 예리하기도 했지만, 주위 인물 천거에 늘 귀를 기울이고 훌륭한 사람을 초빙하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면서 위나라에는 인재들이 모인다 – 그 중 한 사람이 훗날 손자병법과 더불어 2대 병법서라 불리우는 오자병법을 편찬한 오자였다. 문후는 50년간 재위하며 위나라를 전국칠웅의 으뜸으로 세웠는데  본인의 뛰어난 자질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들의 보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가장 잘해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삶에 훼방을 놓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직접적으로 컨텐트를 개발하기 보다는 인재들이 몰려들어 서로의 역량을 재보고 나라 안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한번즉 고려함즉이 어떠한지 지도자에게 묻고 싶다. 그게 정 싫으면 컨텐트 개발자가 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