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idea, taken seriously

Protected: [습작] 사회 초년생의 죽음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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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습작] 베드로의 3번 부인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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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text] eclipse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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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습작] hitchhiker’s guide to marriage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October 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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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mise] acting naturally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August 17, 2009

사랑을 잃은 이가 마치 쥐어짜 버려진 레몬처럼 느껴질 때 – 이는 그가 노틀담의 꼽추와 같은 퇴보 유전자이기 때문에 감정이 남아있는것일까? 아님 사랑의 본질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지적 미숙함으로 인한 오해일까? 둘 중 어떤 시나리오를 생각해봐도 그는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는) 자연주의자가 될 수 없다.

자연주의의 목적은 지구상에서 번영하는데 있다. 즉, 강한 유전자를 전할 수 있는, 필요 이상의 감정 이입을 범하지 않는, 이성적으로 무결함적인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만을 그린다.  만일 Naturalistic Aptitude Test가 있다면 여지없이 3대 안에 도태될 유전자인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August Strindberg의 Miss Julie는 이렇게 도태될, 그래서 삶 자체가 고통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degenrate 인물의 추락을 다뤘다. 허나 Miss Julie는 명예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귀족가문의 딸이기 때문에 추락을 견디기보다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 – 마치 일본 무사가 할복하듯이 – 하였다.

그럼 명예가 없는 그는 어떤 입장인지? 자연주의 – 진화론에 의해 도태될 나는 degenerate임이 틀림없지만 (자만할지언정) 명예와 자존심은없기 때문에 Miss Julie처럼 자살을 택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남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만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세속적) 상승을 꿈꾸기 때문에 자연주의적 역할을 연기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낭만주의, 댄디즘 등등 기타 xx주의와 달리 살을 붙이기 보다 뼈를 드러내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기할 수 없다. 마치 마른 사람에게 옷을 많이 입혀서 뚱뚱한 사람을 연기하도록 할 수 있겠지만, 뚱뚱한 사람에게 마른 사람을 연기하라고 할 수 없듯이 자연주의는 연기될 수 없다; 자연주의에 철저히 입각하지 않는 이상 그들과 같이 쿨해질 수 없다; 시크하지만 내 여자에게 따스한 도시 남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연기하기 때문에 – 모든 배우가 대사를 외우고 기억 속에서 고통에 가득한 사람의 표정을 기억해내 얼굴로 끄집어내야하듯이 – 기억에 종속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필히 그를 배반한다. 기억력 자체가 그리 믿을만한 – 가물가물할 뿐더러 왜곡마저 가능한 – 기억을 통해서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사랑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음 단계를 밟고 나설 수 밖에 없다. 다음 단계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흔히들 이를 택한다) 그럴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저 대상이 바뀔 뿐, 과정에 있어 반복이고 이는 상승을 꿈꾸는 그로서 택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어느 순간이 온다: 행운에 의지하여 (행운에는 나로서 주체가 취하는 행동도, 연기도  없다; 애초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이란 해처럼 그가 직접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햇빛이 비추는 물체들을 봄으로서 해가 있다는 것을 믿을 뿐이다. 그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믿고 그로 인해 보게 된다; 실체를 못봐서 믿음 아래 모든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행동한다; 남에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는 액션을 통해서 불가능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행동한다. 댓가성 액션을 계산하고 취하는 행동은 진화론적 쳇바퀴에 자기 자신을 던져 넣는 꼴일 뿐이다. 어느덧 온갖 배경과 소품이 갖춰진 무대 위의 – 기억력 토대로 이뤄지는 – 연기는 끝나고 조건 없이 황량한 무대 위에서 그 혼자만이 반복하며 영원을 바라보는 사랑만이 남을 뿐.

Beethoven 9th symphony 3rd movement: half lover’s lament, half prayer.

[premise] 연극, 참여, 무사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July 23, 2009

All the world's a stage (from As You Like It 2/7)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 At first the infant, Mewling and puking in the nurse's arms. And then the whining school-boy, with his satchel And shining morning face, creeping like snail Unwillingly to school. And then the lover, Sighing like furnace, with a woeful ballad Made to his mistress' eyebrow. Then a soldier, Full of strange oaths and bearded like the pard, Jealous in honour, sudden and quick in quarrel, Seeking the bubble reputation Even in the cannon's mouth. And then the justice, In fair round belly with good capon lined, With eyes severe and beard of formal cut, Full of wise saws and modern instances; And so he plays his part. The sixth age shifts Into the lean and slipper'd pantaloon, With spectacles on nose and pouch on side, His youthful hose, well saved, a world too wide For his shrunk shank; and his big manly voice, Turning again toward childish treble, pipes And whistles in his sound. Last scene of all, That ends this strange eventful history, Is second childishness and mere oblivion, Sans teeth, sans eyes, sans taste, sans everything.

셰익스피어는 우리 삶 자체가 연극이라고 그래서 우리 모두 각자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맞는 역할을 맡은 배우라고  말한다. 햄릿은 아버지 원수를 갚는 과정에 두 가족 – 클로디어스의 왕가와 폴로니어스의 가문 – 송두리 박살낸 비극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 – 자신만의 성 안에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방종하던 과거와 달리 궁정에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예의범절을 지키고 끊임없이 남을 속여야 하는, 다른 말로 독을 품어야 하는 지금 – 에서 고뇌하고 연극해야만 하는 원치 않는 배우의 길을 걷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다룬 연극이다.

흔히 말하길, 연극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표현한다고 말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면서 연기가 비로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즉, 우리는 여태까지 남의 표정과 습관을 잘 관찰하는데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의 재현하는 모습을 연기라고 생각했건만 셰익스피어는 추악하고 소심한 사람들이 남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모습 자체가 ‘연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세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클로디어스야 양심에 찔리니 햄릿을 지켜보았지만 폴로니어스는 원한 관계에 얽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간섭하는 버릇으로 햄릿을 방해한다. 굳이 칼부림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방해 받는다. 사탄은 본래 “방해하는 자”라는 모호한 의미를 지녔으나 이를 좀 더 이해에 돕기 위해서 하나의 객체로 형상화한다. 어떠한 길을 택하든 필히 이를 방해하는 존재는 있기 마련이다.

그 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 시키고, 차별화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참여하지만 이는 “연기”다. 이러한 연기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나에 대한 기억이 뒤바뀌며 겹겹히 쌓여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방해 받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라; 연기를 그만두자. 내가 느끼는 감정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연극으로 담아내자.

자 – 2년에 걸친 작업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Protected: [premise] remember, remember!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July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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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ed: [습작] sanctuary 주석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June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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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어떤 스타일의 연극을 쓸 것인가?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June 27, 2009

Styles of Art를 항상 염두에 두라. 선배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 충분히 답사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선배들의 연극을 더 많이 읽자, 읽어.

1. Turing test 연장선을 떠올려 보자: 투표소 칸막이 휘장을 놓는다. 한칸 Yahweh YHWH 가 있기에 직접 휘장을 열어 제껴보려고 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구약에서 신의 얼굴을 보면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므로 항상 휘장을 드리웠다). 반면, 한칸에는 투표소 즉, 대중 (mass N)이 존재한다 – 어떠한 대답을 줄까? 그리고 옆 칸에는 부모님 (outdated advice), 그 옆 칸에는 저명한 교수님/… 이 칸막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이 나옴에 따라 주인공은 행동한다. 어떤 결과가 이뤄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투표 칸막이 뒤에 있지 않고 모든 곳에 나와 함께 계심을 망각하고 새로운 신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2. 과학을 통해서 우리의 욕망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사람의 운명을 사람 손으로 결정하는 첫 계기가 원자폭탄이였는데 인류에게 주어진 새로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통제할지에 대한 이념적 투쟁: Strauss와 Teller의 무절제한 “다다익선” vs. Oppenheimer의 “폭탄은 만들되, 철저하게 통제한다”는 청문회를 통해서 일방적 Strauss의 승리로 이어지고 미국은 곧 끝없는 무기 양산 체제로 돌입한다. 그 결과, 195x년경 미국이 보유하던 300여개의 원자폭탄은 (수년 안에) 7만여개로 증가했다. 나는 대중이 병을 대하는 태도가 폭탄을 대하는 태도와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병을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서, 돈을 때려넣으면서 해결하려 한다. 오펜하이머는 폭탄은 이미 만들었지만 이를 제어하고 함께 사는 방법을 꾀했다. 병에 대한 치료 또한 우리가 만들었다. 하지만 무절제하게 생산할 수 없다 – 제어하고 병과 같이 공존하는 방법 (실로 암을 지닌채 오래 사는 사람 수가 꽤나 높다) 을 꾀해야 한다.

3. 우리는 북한의 굶주림, 궁핍함을 무시해왔다. 북한의 경우 이는 holocaust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무시해왔으나 이제와서 약 안 준다고 난리다. Do you see the irony here?

[premise] abortion is so wrong, it’s not even wrong

Posted in premise-character-conflict by bebe on June 25, 2009

처음으로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내용 즉,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아이(=노인)가 노인(=아이) 되는 시간의 흐름을 접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어떤 취한 작가가 저런 dopey한 내용을 낸 것이지?”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Scott Fitzgerald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낸 시나리오라고 하니 내 첫 반응은 나름 정확했던 듯 -_-; 하지만 난 황당한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황당하면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거든. Seth Neddermeyer가 Implosion method가 처음 제안했던 순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시간의 흐름이 아닌, 순간들을 산다고? 사랑의 순간이 엇갈린 안타까움? 쉬크한 현대인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것을 말하려 함으로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그래서 아쉬워서 좋은 영화였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 파울리 말을 빌리자면 – 이렇게 생각해.

This paper is so bad it is not even wrong.

Wolfgang Pauli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혹은 개념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무기이다. 낙태와 고려장을 비교했더라면 차라리 뭔가 보여줬을 것 같다. 낙태와 고려장, 둘다 타인에게 부담되므로 한 사람의 시작과 끝을 강제적으로 종료시키는 행위임에 있어서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투표권이 있는 시민 대신 투표권이 없는 생명을 사장 시켰다는 점이 다를 뿐 정도?  그래서 한 사람의 시작과 끝을 쇠파이프 휘듯이 이어 붙일 수 있다면, 낙태는 곧 고려장이고 고려장은 곧 낙태라는 한 사람의 주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낙태 시키는 사람은 자신이 같은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안심한 상태”에서 +/-를 따져 내리는 결정인 반면, 고려장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이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가 진행될 터이니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