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idea, taken seriously

투잡

Posted in Les Miserables by bebe on 10월 31, 2009

누구 말마따나 벌써 늦가을이다; 시간 지나는 줄 몰랐다. 작년 중순부터 원치 않게 투잡 뛰면서 참으로 바빴던 한 해였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작정한 2009년은 어느덧 다 지났고 2010년이 왔다.  2009년 목표였던 “남 비난하지 않기”는 침묵으로 이어지다가 간혹 참지 못하고 울컥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아쉬운 점을 남겼다. 2009년은 내 안에서 삭힌 해라면 2010년은 이제는 밖으로 뻗어나가는 해: 당장 손길이 긴요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갈 생각이다. 한달 후 회사를 옮길 때 덩달아 세컨잡 직종 또한 이를 반영해서 바꿀 생각이다.

미혼모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 학부모 등쌀에 밀린 학교가 학생을 쫓아내는 아이러니컬한 – 상황인만큼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원에서 12주 남짓 적응 교육 받고 자본주의 사회으로 방출되는 북한 귀순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제 슬슬 온라인 교육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며 결과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때 온라인 교육이란 동영상, podcast 수준을 벗어난 게임 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워나가는 온라인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직접 만나보면서 에너지가 충만하고 의욕이 충만하다 느낀 이분들에게 손길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 분명 방법이 있을터.

쉽지는 않겠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리면서 인내하자구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p.s. 아, 연극 좀 끝내자…

[부고]

Posted in Les Miserables by bebe on 8월 11, 2009

고귀한 사람은 조용하게, 의로운 은 일찍이 지는구나.

밖의 비가 하늘이 흘리는 눈물일까.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이임사 전문

Posted in Les Miserables by bebe on 7월 29, 2009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권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2년 8개월 남짓 전인 2006년 10월 30일,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는 결의를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앞당겨 떠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밝혔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건대 새 정부의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강한 책임을 통감함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당초 취임의 변에서 말씀드렸고,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저는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평범한 소신을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으로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업무수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며, 위원회와 ‘긴장어린 동반자’의 관계인 시민사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과 성의로 자료제공과 홍보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고, 제 스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소신과 노력은 극단적인 분리와 대립이 항다반사가 되어버린 세태 아래 빛을 잃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는 일상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정권교체기의 혼탁한 정치기류에 막혀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근거나 법적 업무와 권한에 대한 성의 있는 이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몰상식한 비판, 무시, 편견, 왜곡의 늪 속에서 갈무리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중에 얻고 쌓은 자신의 소회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금언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먼 장래를 기약하면서 홀로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감히 몇 마디 당부와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부하듯이 한동안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경이로운 나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는 군사독재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대다수 국민이 일상적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행태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성취는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근래에 들어와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다시피 던진 충격적인 고백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국제사회에 나가보니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다.”는 유엔 수장의 솔직한 고백이 곧바로 국제인권지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서글픈 현실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부 관료나 국민의 숫자도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권의식은 과거에 자행되던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와 같은 노골적인 인권유린의 악몽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선진사회를 향한 전향적인 발돋움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고귀한 가치는 정권의 교체나 연장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의 교체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코 국민은 인권의 탄압이나 후퇴를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앞선 정권의 실정의 유산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반된 필연적인 변화로부터 구분해내지 못하면 때대로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선진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반이 지난 이날까지 그 장점이 만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느낀 소감은 적어도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신정부의 정식 출범에 앞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이명박대통령이 추진할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입안했던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으로 독립기관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국내인권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기에 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1993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부응하여 설립된 기구라는 것, 권고결의 당시에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한 유엔위원국이 5,6개국에 불과했으나 15년이 지난 오늘에 120개국으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탄생했을 기관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인권의 추세에 둔감한 정부이기에 지난 3월 말에는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한 절차 없이 유엔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조차도, 위원회를 특정목표로 삼은 명백한 보복적인 탄압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불의에 앞장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실로 깊은 비애와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나라, 내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깊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내 나라, 내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임을 믿는 저이지만 그간 빚어진 실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세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습니다. ‘청구인 국가인권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취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입장이 다를수록 요구되는 정부기관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임은 한 사안에서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부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본연의 소임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고언을 드립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전래의 별칭이 상징하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권능은 실로 막강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짊어져야할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다수의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언론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생명이 업무의 독립성에 있듯이, 언론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의 보도에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도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양식이자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이른바 ‘북한인권’이나 ‘촛불집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 오해, 사실왜곡과 같은 부끄러운 언론행태는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간의 존엄을 숭상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철학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의 재직 중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독립기관의 장의 직을 수행한 행운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지 못한 특권과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단 한 차례도 이명박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무능한 인권위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제 개인의 불운과 치욕으로 삭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께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동료들께 감사를 드리고,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린하면서 강행한 정부의 폭거로 인해 창졸간에 직장을 잃게 된 동료직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의연하게 걸어갑시다.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

모두에게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의 축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8일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경환

북한 지원 – 햇볕 정책 그 이후

Posted in Les Miserables by bebe on 7월 10, 2009

내가 본 첫 인도 사람이 배를 움켜쥔 6살배기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Amartya Sen의 Poverty and Famines 를 집어들었고, 내가 태어난 조국이 세계 유일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Famines in North Korea를 연거푸 집어들었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국민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우슈비츠 굴뚝에서 시체 태우는 냄새가 나는 것을 묵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행동이며 우리 모두 동참하고 있다.  우리는 대학살의 방관자라는 후세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통해서 남북 관계 개선 되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노벨상 평화상 외에 결과물이 없다. 역시 취지는 좋았을지 몰라도 유효성은 의심스러운 정책이였다. 한낱 아낙네 정을 좀 더 큰 스케일로 퍼다준 것이다.

Compassion is valueless without severity for otherwise it cannot defend itself against sentimentality.

-Norman Mailer

도와주고 싶을 때 도와주고 상대방 반응이 시원치 않을 때 도움의 손길을 거둔다면 동정심의 발로일 뿐, 진실성이 없다. 사랑이 없다. 그동안 감정에 북받쳐 눈물 대신 쌀을 흘렸을지언정, 상황 개선에 도움 되지 않는다. 이성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Obama마저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Arianna Huffington이다. 무엇이 변화를 끌고 올 것인가?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면서 젊은 날을 헤매는 것도 서태지면 만족해. 왼손잡이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와중에 북한은 굶어 죽어간다. 막막하다,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안타까운 사람들

Posted in Les Miserables by bebe on 3월 26, 2009

상대방 비방하지 않기 – 설사 그 사람이 부도덕한 정치가, 살인범일지라도 죄를 미워할지라도 죄인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올해 나의 목표이다. 우리의 눈과 손가락은 흉악범과 부도덕한 자들을 지켜보고 손가락질하기 위해서 사용될 것이 아니라 약자와 아픈 자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돌리고 손길을 내밀기 위한 것이다. Amazing Grace 작사작곡한 John Newton과 연관되어 잘 알려진 William Wilberforce는 그의 믿음에 의거하여 정치가로서 두가지 목표를 세웠다: 1) 노예 제도 폐지와 2) 영국 제국의 도덕성 회복. 노예 제도는 영국 제국 팽창의 원동력이였기 때문에 좀처럼 호응을 얻을 수 없었으나 26년간 줄창 싸운 끝에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폐지되는 것을 직접 보게 되는 쾌거를 이룬다.

지난 몇년간 정부, 주가 조작하는 재벌3세들과 금융 사기범들, 흉악범들의 악행에 몸서리치던 날들을 잠시 잊어버려보자. 가혹한 현실에 낙담한 나머지 자살하는 사람을 “나약한 새끼 – 어차피 도태될 유전자였던 것이지,” 치부하고 다음 기사 클릭 클릭하기보다 혹시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데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둘러보자. 너나 나와 마찬가지로 객체로서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사람들 –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이들을 뽑은 이유는 제껴두자.

우선 나는 어린 미혼모들 이 점점 설 곳이 없다는 점이 무척 가슴 아프다. 너무나도 남의 도움이 절실한 그 나이, 그 건강 상태에 놓인 여린 아이들이 부모님, 선생님, 심지어 주변 친구들에게 낙인이 찍혀 가출과 자퇴를 하게끔 강요 받고 있다. 아이를 갖게 되는 상황에 – 섹스- 대해서 수도 없이 듣고 보고 경험한다. 두 남녀가 진실로 사랑하거나 순간적 감정에 휩싸여 판단력이 흐려져서 실수하던 간에 지금 이시간에도 수백명 수천명의 잠재적 미혼모가 될 수 있는 상황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제발 그들이 더럽다, 부도덕하다는 둥의 눈빛은 위선이다. 우리가 10명 죽였다는 연쇄 살인범 용의자에게 핏줄 올리고 헐뜯으면서 (추정) 연간 34만명을 죽이는 낙태를 강요하는 사회적 눈과 편견에 대해서 관대하다는 것은 더 큰 위선이자 모순이다. 낙태의 찬반 토론에 앞서서 낙태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정신적 문화적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조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린 선택 – 미혼모, 대학 낙방, 이혼, 사업 파산 -으로 인하여 어떠한 불행한 결과가 일어나더라도 이로부터 박차고 나올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는 사회가 되어서 안된다. 창조와 혁신을 강조하는 사회가 아닌 사랑과 인애의 공동체, 정죄와 죽음의 사회가 아닌 용서와 구원의 공동체를 바라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쫓아내는 학교의 입장이 이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사회에서 숭배하는 – 하지만 옳지 못한 – ‘고객/사용자 원하는 것을 해줘라’에 따르면 미혼모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암암,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지. “자꾸 이러면 안되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그런 것을 어떡해요?” 라 말하는 학부모에게 “네, xx 어머님 안되는 것 알면 그러시지 마셔야죠.” 라고 딱 끊어서 말할 수 있는 깡 있는 선생님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아이들에게 검정고시 혹은 기타 방법을 통해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대학교 그 이후까지 온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명문대 들어가고 박사학위/최고 경영자가 되어 GNP 2만불의 선진국 한국 만들겠다는 엘리트들보다 이러한 아이들에 대하여 더 큰 기대와 간절한 꿈을 갖고 있어. 사회적으로 저출산이 진심으로 우려된다면 신혼 가정으로 하여금 억지로 애 낳게 해서 2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할 것이 아니라 이미 애들을 낳고 있는/낳게 될 미혼모들에게 좀 더 사랑을 쏟아주는 것이 좀 더 현실적 방안 아닐까?

노숙자에게 필요한 것은 따스한 국물과 빵과 바람 안드는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생각, 혹시 해보지 않았나?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배를 ‘항해’한다고 부르며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배를 ‘표류’한다. 항해에 앞서서 자신의 위치와 확실하게 알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갖춰야할 것이 나침반, 지도와 항해학적 지식이라면 인간의 위치와 목적지를 가르치는 것은 인문학이다는 것이 클레멘트 코스의 철학이다 – 나는 여기에 신앙을 덧붙이고 싶다. 클레멘트 코스는 노숙자들에게 철학, 문학, 역사, 예술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강의를 제공한다. 임영인 신부님과 기타 여러분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성 프랜시스 대학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개설되었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마이크로 뱅킹 사례를 보더라도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물론 자본이 필요하지만 큰 그림으로 볼 때는) empowerment이다. Empowerment라는 단어를 영한사전으로 찾아보니 ‘권리를 부여하다’인데 그러한 법 냄새나는 사전적 의미보다 사회적/정치적/신앙적 힘 – power – 을 실어주는 것에 가깝다. Empowerment는 자아를 존중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밥 세끼 먹듯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 또한 양식을 요구하는데 이 것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 일년에 책 한권 읽는다든지 일주일에 한번 교회가서 예배 1시간동안 의자만 따듯하게 뎁히고 돌아오는 – 영과 육신이 괴리되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어떤 의미로 노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수업 아닐까 싶다.

성매매 단속 -> 효과적이지 못한 재활 -> 성매매 장소/업종 잠시 이동의 쳇바퀴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도는듯 싶다. 집이 오피스텔 즉, 주거지역이 아니다보니 주변에 성행하는 안마방, 성인 술집은 성매매를 우리 삶 깊숙히 침투하는 바람에 일부는 결혼을 합법적 성매매일 뿐이라고 말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마음이 아팠다 – 분명 결혼의 취지는 이런 뜻이 아니였는데 어찌 이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섹스의 아웃소싱은 – 성매매 – 남녀간의 그 특별한 관계, 너무나도 뜨겁고 친밀한 관계를 차디 차게, 불만족하 게끔 만들기 때문에 (한국 봐라, 눈물 난다 ㅠㅠ) 반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 끝까지 동행할 것이라는 설명으로 성매매를 정당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1차원 해결방법으로 성매매 단속과 같은 1차원적 방식으로 수요를 억제하면 필히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서) 다시 균형점이 회복될 것이다. 이를 줄이려면 공급 자체를 줄여야 한다 – 즉, 왜 성매매를 시작하며 유지하는 것일까 질문 자체를 대답해야 한다. 일시적 성매매의 근원을 여자가 원해서, 정당한 직업으로서 여성의 성해방 운동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꽤 많아지는 추세이지만 많은 자료와 보고서에 의하면 경제적인 이유가 압도적으로 제1 원인이다. 하지만 이쪽 업계 여성들의 8/10이 자살 충동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마치 늪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은 앞서 미혼모처럼 구원의 손길 내미는데 인색한 사회의 연속임을 알려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방안이 – 무상 교육/진료/안식처/직업- 절실하다는 것을 통계가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개인은 사회의 최소 단위이자 유일하게 노력할 가치가 있는 객체이다. 선행의 시작과 끝도 개인에서, 작은 공동체에서, 작은 직장터 (서울 이웃 린 치과) 이지 피튀기며 권력의 정점을 쟁취한 후 피라미드 밑단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눠주겠다는 약속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소위 좌파라는 집단이 – 최근 좌파의 신조는 ‘남의 돈 끌어쓰자’인듯 – 허구언 날 재산의 재분배만 외칠 뿐, 약자에게 여전히 손길가지 않는다면 그들 신자유주의와 또한 별 다를바 없다.

Israel – Auschwitz – Holocaust

Posted in Les Miserables by bebe on 1월 16, 2009

요즘 Gaza 폭격 관련되어 “유태인들은 진작 수용소에서 씨를 말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식의 글 쓰는 사람이 한두명 아닌 것을 보고 섬뜻해졌다. 이스라엘은 자기방어를 넘어 필요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UN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있는 바지만 “히틀러가 미래를 예견했던건가 -_- ” 라니… 대체 이 사람들은 역사책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던 것인가.

유럽 생활 8년동안 여기 저기 많은 관광 장소를 가봤지만 그 중에서 내가 콱 메어지도록 감동적이거나 가슴 아프던 장소는 몇군데 안되는데 그 중 하나가 Auschwitz와 Bierkenau이다. 아우슈비츠 정문에는 그 유명한 Arbeit macht frei 문구가 붙어있다.일하면 자유를 준다는 뜻인 그 문구를 보면서 그 말을 순수하게 믿고 들어선 유태인은 몇이였고 그 중 몇이나 살아서 돌아갔을지 상상해보았다.

뼈만 앙상한 시체들, 90cm x 90cm 독방, 독가스실, 인간재가 휘날리던 굴뚝, 참혹한 절망을 Elie Wiesel를 비롯하여 숱한 작가들이 잘 담아냈으니 (꼭 읽어봐라)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커다란 컨테이터 4-5개 규모의 방이 유태인 머리카락으로 가득했을 때였다. 이 것을 모아서 코트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일제시대 때 삽살개 잡아서 군용모자 만들었다는 얘기 듣고 삽살개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반면 – 이 때 측은한 마음은 사람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되 그 희생양이 된 삽살개들에게 안타까움에 가깝다 – made in Auschwitz 코트는 인간의 몸에서 추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빼내고 활용하는 인간의 영특함(?)에 질리게 한다.

내가 그 인류의 일원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두렵다. 내가 60년전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과연 그 때 하얀장미단처럼 당당히 맞서싸우다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면 99% 독일인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혹은 Milgram 실험처럼 상부에서 날 시켰다는 핑계 대면서 동조했을까? 그 것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어떠한 이유를 들더라도 – 설사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업과 각종 횡포로 독일을 착취했던간에 또는 하나님에게 선택된 민족이라 뽐내는 모습이 아니꼽던간에 -600만명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 시킬 수도 없겠거늘 이 Arbeit macht Frei 정문 안에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씨앗을 말린다”는 말이 입에 차마 담기에도 무섭고 끔찍한 말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참혹하다, 너무나 참혹하다.

유럽 여행 다녀온 애들 중에서 폴란드 근방 다녀왔다는 사람 있으면 혹시Auschwitz를…? 하면서 조심스레 물어보지만 좋게 좋게, 모처럼 큰 돈 들여서 유쾌한 여행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 실로 다녀오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좀처럼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 여지껏 Auscwhitz를 다녀왔다는 한국 대학생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외국어만 된다면 하루 빨리 글로벌 무대에 나가서… “하며 떠벌리는 애들은 많이 봤어도 외국에 누가 살고 있으며 무엇을 겪어왔으며 어떤 말을 삼가해야하는지 즉, 외국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 갖고 공부하는 한국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글로벌 인재를 운운할 때가 아니라 하루 빨리 글로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야지 – 나부터 시작하여.

관광 여행의 본래 취지인 ‘타지의 토지, 풍속, 제도, 문물을 관찰한다’ 에 적합한 목적지로서 나는 여지없이 Auschwitz를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