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만능주의는 생각 밖으로 우리 안에 깊게 파고 들어왔다.

대자연을 깎아내어 푼돈 버는 사람이 있고, 깍아낸 자연으로 물건을 만들어내 돈 버는 사람이 있고, 돈으로 큰 돈 버는 사람이 있는데 큰 돈으로 행복을 사는 사람: 게임으로 치자면 공성전이나 레이드와 같은 최종 컨텐츠에 대해 딱히 들은바 없다. 최근 빌 게이츠가 1억 7천만불로 말라리아 없는 세상 통채로 사려고 하지만 이건 정말 예외 케이스.

사실 돈으로 행복을 산다는 최종 컨텐츠가 없다는 사실에 안심된다. 마치 하버드가 진정 최고의 교육이라면 전세계 수 많은 대학생 중에서 7000명 남짓하는 사람에게만 제공 되어서는 안되듯이 무언가 최고라면 가급적 많은 사람,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선택 가능해야 한다는게 나의 믿음이며 거기에 나의 삶을 걸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복지라는 이슈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부터 유추하건데 점점 이런 슬픈 최종 컨텐츠가 당연시 되고 있다. 복지에 돈을 얼마나 투지하냐에 서로 밥그릇 싸움할 뿐, 복지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때는 사회 구성원이 협심과 유연성을 발휘하여 어떻게 서로를 챙겨줄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쉽게 말하면, 아빠가 힘들더라도 애 좀 돌보면 될 일인데 이걸 유모 데려와서 해결하려니까 고학력 조선족 찾느라 고생하고 제대로 아이 돌보는지 cctv 설치해야하고 the whole shebang. 돈이란 매체를 걸쳐서 애를 사랑하고 돌봐줄 생각말고 그냥 애를 돌봐줬으면 좋겠다.

내 주변에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있지만 대화에는 독과 불만이 가득하다. 부조리한 세상, 정부, 기업로부터 돈을 빼앗아 ‘정의로운’ 방법으로 분배할 생각에 집착한 나머지 그냥 알기 쉽게 옆사람 도와주면서 받는 심적 위안이 그들 가슴을 마지막으로 만진게 언제인지… 진정 최고의 복지라면 나는 부족한 예산 안에서도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우리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돈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말이다.

나의 역할

기업과 기업인의 역사를 읽으며 조심스럽게 주장하건데 대기업의 역할은 몇몇 능동적 사람들의 창작물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싸게, 보다 편하게 제공하는데 의의를 둔다. 1800년대 초반 법인, 주식을 Vanderbilt를 비롯한 몇몇 사업가와 자본가들만 이해하고 대중에게 어려운 개념였을 때, 즉 월가가 한산했을 때만 하더라도 법인이란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적 서비스를 대행하여 제공하는 조직이였다. 그 이후 수익 극대화를 위해 존재하는 단체로 목적을 잃었으나 여전히 대중 상대하는 조직임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애초에 법인이란 누군가 잘 만든 것을 보다 널리 퍼트리는데 의의를 두는 법인의 특성 (최초 mp3 플레이어를 발전시켜 전 세계에 퍼트린 애플, 작은 안드로이드 개발사를 인수하여 아이폰의 대체재로 끌어올린 구글) 임을 잊고 “대기업 a사는 혁신적이지 못하다”, “남을 베끼는 데 급급한 b사”라고 평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의견으로서 얼마든지 유효하지만) 뚱뚱한 사람은 관성이 크다는 말과 별반 다를바 없다.

불만을 갖기 앞서 나의 불만이 올바른 대상,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주변 확인하는게 우선이다.  이처럼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며 지금 상황에서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는 묻는 습관은 5학년 때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가르치는 외국인 선생님과 소리 지르는 아이들 틈 사이에 던져진 때부터 길러진 듯 싶다. 한시도 편하게 분위기에 녹아들 수 없고 늘 이방인으로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 채 살아온 탓인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늘 내 자신에게 묻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이 습관은 나를 좀 더 나은, 좀 더 독립적인 사람으로 치켜 올려 세워준다 믿어왔다. 반대로, 내가 어디에 왜 있는지 있어나, 해야 할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은 실패라고 판단했고 피했다.

그런 나였기 때문에 봉사의 실패는 어느정도 예상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불분명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곳은 분명 시작할 때 나의 참여가 이 곳에게 큰 도움이 되리 수 있을 것이라 자만하던 것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쓰라렸다. 그 외에도 다른 사건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총체적으로 돌이켜 보며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과연 어디에서 뒤틀린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작가 자신을 Nekhlyudov처럼 중요한 역할 지닌 사람으로 그리는 Tolstoy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인물에 작가 자신을 투영시킴으로서 독자의 시선을 작가가 아닌, 일상 삶 속의 인물들에게 되돌린 Chekhov가 손에 잡히며 읽히기 시작했다. 나는 평균 이상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가르친 사람은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하고, 내가 시간을 투자한 집단은 구조와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기대치를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주인공은 그 사람들이 아닌 내가 된 셈이였던 것은 아닐까?

관심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 다시 되돌리자. 내가 아니라 그들이자 그 사람이다. 나의 역할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나라는 자아를 없애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 것이 올바른 대상이자 올바른 방향인듯 싶다. 올해 나는 다시 시작한다.

봉사, 진정성, 실패

교사로 활동하던 봉사 시설이 대안학교로서 인정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두번 감사했다. 첫번째는 학업을 미처 마치지 못한 아이들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기반이 뒤늦게나마 갖춰졌기에 감사했고 두번째는 내가 임시 교사로서 한계에 부딪치고 고민하던 차에 짐이 덜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공대생 친구들이 주도적으로 기능 또는 제품 만들 노력은 안하고 그저 어떻게 벤처 회사 찾아 초창기 투자자로 이름 올릴 수 있을까에 궁리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지던 참이였다. 그 것마저 모잘라 인터넷상으로 누가 가장 먼저 안타까운 사람 찾아내서  retweet하고, 흔해빠진 자신의 견해를 들어줄 virgin ear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불우한 이들을 위해 마음 한켠을 비운 정도면 괜찮아, 합리화 시키려는 내 자신이 가장 역겨웠다. 거울에 반사되는 나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어느 주말에 나의 오랜 외국 생활 경력을 정리한 이력서를 사회 복지사에게 보냈고 얼마되지 않아 임시 영어 교사직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채용과 달리 수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영어 배워서 해보고 싶은 것 3가지를 정리하라고 준 A4 용지를 일주일 후 깨끗하게 그대로 가져왔다.  항상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한 습관 탓인지 지나치게 욕심 많아 훗날 인류에게 해가 될 녀석을 가르칠 자신은 있을지언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뱃속의 아가가 건강히 크기 바란다는 순둥이 예비 엄마들은 자신이 없었다.  내가 5학년 때 하루에 챕터 5장씩 풀어 제끼고 단어 50개씩 외우던 책을 한달동안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대신 쫙쫙 풀어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니 지켜봐야 한다면서 급한 마음 억누르기 급급했다. 보며 안타까웠다.  지난 수업 때 나온 단어 중 하나라도 기억하면 억지로라도 칭찬 해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타이르면서 예비 엄마들의 공부 습관이 기적적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막판에는 포기에 가까운 심정이였다.
때마침 시설이 대안 학교로 승격 되면서 나의 노력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두번 쉬었다. 첫번째 한숨은 나라는 한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는 사실에 안심한 큰 한숨이였으나 두번째 한숨은 나라는 한 개인을 위해 고개 돌린채 몰래 내쉰 작은 한숨이였다.  나의 노력은 실패였다. 봉사라는 단어를 차마 쓸 수 없다 – 아마 그들은 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부터 성과를 내야겠다는 무언의 압박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두려운 상상마저 하고 있다. 학업 마치기도 전에 집단 이기주의적 학부모들 등쌀에 떠밀리고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미혼모를 챙기자, 애 낳기 싫다는 여자들 억지로 달래지 말고 미혼모를 챙기자, 이런 나의 이성적 판단과 강한 의지보다 미혼모들이 진정 필요한 것은 따스한 시선이 아니였을까.  아니, 애초 시작할 때 그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줘야 한다는 것조차 알고 있었으나 여전히 내게 그들은 여전히 학업 성과가 지지부진한 학생들이였던 것이지 예비엄마들로서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에이, 그런 이유일리가. 수동적인 교육 환경에 처하지 않아서? 그런 핑계 따위. 내가 차가운 도시 남자라서? 지금이 차도남 개드립 칠 때냐…
어쨌든 봉사하면서 채워지길 바랬던 2010년은 이렇게 나의 가슴에 구멍을 남겼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

on dharma धर्म

인도의 양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에서 무척 강조하는 개념 중 하나가 법(dharma धर्म)이다.  이는 정의로운 자가 밟아야 할 길, 또는 율법인 셈이다.  라마야나에는 ‘라마’라는 인물 – 그들에게 마치 성경의 예수님에 준하는 절대 선의 상징이자 비슈누 힌두신의 아바타인 라마 – 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 독자들에게 설명할 때 그 당위성을 dharma에서 찾는다. 왜 흰눈같이 순결한 라마가 추방 당해야만 하는지, 왜 라마는 그 와중에도 복수를 다짐하지 않고 온전히 복종해야하는지 이해 못하는 주변 인물들에게 dharma를 통해 극복하라고 거듭 강권한다.   ‘복수할 생각이면 3배로, 아니면 잊어라’를 신조로 삼았던 예전의 나로서 고통을 의무로서 묵묵히 견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설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힘든 여정이라고 한들, 극적인 결말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뿐 고된 삶이란 여정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려웠다. 생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물리적 폭력을 당함으로서 인간이 강해지지 않는데 뭔 개소리인가! 따라서 dharma란 우민들을 끊임없이 억압하기 위한 정신교육의 변형된 하나의 수단으로서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허나 이런 믿음이 인간관계와 사회 생활을 겪으며 점차 얼룩지기 시작하면서 고통이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라기 보다 상대방을 보다 가까이 안을 수 없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드는 멍 즉,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두각되기 시작했다.

고통이 이토록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시대 불변이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역사책을 읽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겠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국가의 안녕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비정한 (하지만 피눈물 흘린) 아버지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사마천 본인도 사형을 모면하기 위해 필요한 50만전이 수중에 없었기에 궁형을 (생식기 out)을 택했다.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며 불과 10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옆 사진처럼 죄인을 살려둔채 살점을 도려내는 “능지” 형벌이 이뤄졌다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서 고통을 극대화 시킨다). 따라서 고통을 일종의 범죄, 불의로 여기는 흐름은 생각 외로 근현대적 발상임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고통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무엇이 촉진했을까? 기원전 140년부터 1900년도까지 진행되다가 지난 100년 사이에 급속도로 바뀐 인간의 모습 중 어느 무엇과 인과관계를 지닐까? △A가 일어나는 동안 △B가 측정되었다고 해서 A~B의 연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약하지만 홉스봄처럼 역사를 통달하지 않은 이상, 인과관계를 일일이 추적한다는 것이 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니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한번 찔러본다.

지난 100년과 그 이전을 인구와 자본/자산 밀도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게 보이는 차이는 바로 도시화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화 현상을 가능케 한 것은 원동력은 (이동 및 통신 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고도화 된) 업무 분업화이다. 즉, 인류는 지난 100년간 업무 분업화를 고도화 시킴으로서 생존에 점차 유리하도록 자리를 잡았다. 주술사 대신 의사를 만들어서 유아사망율을 낮추는 등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듬으로서 전체가 혜택 볼 수 있는 방안을 꾀하였다. 대중이 억만장자를 만들어줬고 대중을 위한 영화 배우가 생기듯이 점차 학문의 흐름 또한 수사학, 인문학을 통해 개인의 완성보다는 대중으로 이뤄진 사회의 완성에 뭔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실용학이 점차 발전 되어왔다. 물론 개인과 사회는 늘 항상 상충하지 않으며  서로 보완해주는 부분 없지 않다.하지만 전반적인 큰 흐름을 봤을 때 우리는 업무 분업화를 통해서 각자가 마땅히 맡아야 할 일을 남에게 전담 시킴으로서 개인의 영역을 허물고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고도화 된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업무 분업화가 점차 확장되어 고통마저 남에게 전담 시켜주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아버지는 육아가 귀찮은 나머지 어머니에게 미루고, 각자 책상 주변을 청소하기 귀찮은 나머지 건물 청소부에게, 내 아들은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기에 귀하니까 남의 아들에게… 그리고 미처 아픔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못한 사람은 “왜 그러지 않았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하면서 아픔을 지닌 것 자체가 바보인마냥 그 사람을 비웃는다. 그 것이 연인간의 이별의 아픔이 되었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되었든 (머리로) 분리 시킬 수 있는 것을 미처 분리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경멸이 사회에 만연하다. 그 슬픔을 대처하는 방법보다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잊게 되어있어” “다른 사람을 만나” 식으로 대체하는 것만 가르칠 뿐, 이별의 아픔을 내 안 깊숙한 곳으로 받아들여 쇠약해지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같이 숨쉬고, 같이 지내면서 같이 견딘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만일 무언가 고통을 대신해줄 대체제마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비로서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애도를 표한다.

점차 고통에 대처하는 법은 현대 문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선조들을 가르켜 미개하다 혹은 문화적으로 뒤쳐졌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들이 우리보다 능숙하게 아픔을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과연 그들이 덜 미개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묻다보면 결국 다시 dharma 앞에 놓인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설사 대부분이 비웃더라도 내가 가야하는 길, 바른 길은 무엇인가.

[펌] 국가별 일주일치 식량

일본:고다이라시의 유키타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37,699 Yen or $317.25 (약 298,000원)
선호 음식: 사시미,과일,케이크,감자칩

이태리:시실리의 만조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214.36 Euros or $260.11(약 244,500원)
선호음식: 생선,라구 파스타, 핫도그, 냉동어류

채드:브레이드징 캠프의 아보우바카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685 CFA Francs or $1.23(약 1160원)
선호음식: 신선한 양고기 스프

쿠웨이트:쿠웨이트시 알 하간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63.63 dinar or $221.45(약 208,000원)
선호 음식:바스마티 쌀과 요리한 닭 요리

미국:노스 캐롤라이나 레비스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341.98(약 321,460원)
선호 음식:스파케티,감자,세사미 치킨

멕시코: The Casales family of Cuernavaca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1,862.78 Mexican Pesos or $189.09(약 177,740원)
선호 음식:피자,크랩,파스타,치킨

중국: 베이징의 동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1,233.76 Yuan or $155.06(약 145,750원)
선호 음식: 달콤하고 신 소스를 곁들인 조각나고 튀긴 포크

폴랜드: The Sobczynscy family of Konstancin-Jeziorna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582.48 Zlotys or $151.27(약142,200원)
가족 조리법:당근을 곁들인 돼지 도가니, 셀러리와 파스닙 나물

이집트: 카이로의 아메드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387.85 Egyptian Pounds or $68.53(약 64,400원)
가족 조리법: 오크라와 양고기

에콰도르:팅고의 아이미 가족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31.55(약 30,600원)
가족 조리법: 양배추를 곁들인 감자 스프

몽골리아: The Batsuuri family of Ulaanbaatar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41,985.85 togrogs or $40.02(약 37,620원)
가족 조리:양고기 만두

영국: The Bainton family of Cllingbourne Ducis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155.54 British Pounds or $253.15(약238,000원)
선호 음식:아보카도, 마요네즈 샌드위치,참새우 칵테일, 크림 쵸코릿 케이크

부탄: The Namgay family of Shingkhey Village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224.93 ngultrum or $5.03(약4,700원)
가족 조리: 버섯,치즈와 고기


독일: The Melander family of Bargteheide
일주일 음식 소비 비용: 375.39 Euros or $500.07(약 470,000원)
선호 음식: 양파를 곁들인 튀긴 감자,베이컨과 청어, 계란과 치즈를 곁들인 국수,피자,바닐라 푸딩

투잡

누구 말마따나 벌써 늦가을이다; 시간 지나는 줄 몰랐다. 작년 중순부터 원치 않게 투잡 뛰면서 참으로 바빴던 한 해였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작정한 2009년은 어느덧 다 지났고 2010년이 왔다.  2009년 목표였던 “남 비난하지 않기”는 침묵으로 이어지다가 간혹 참지 못하고 울컥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아쉬운 점을 남겼다. 2009년은 내 안에서 삭힌 해라면 2010년은 이제는 밖으로 뻗어나가는 해: 당장 손길이 긴요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갈 생각이다. 한달 후 회사를 옮길 때 덩달아 세컨잡 직종 또한 이를 반영해서 바꿀 생각이다.

미혼모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 학부모 등쌀에 밀린 학교가 학생을 쫓아내는 아이러니컬한 – 상황인만큼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원에서 12주 남짓 적응 교육 받고 자본주의 사회으로 방출되는 북한 귀순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제 슬슬 온라인 교육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며 결과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때 온라인 교육이란 동영상, podcast 수준을 벗어난 게임 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워나가는 온라인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직접 만나보면서 에너지가 충만하고 의욕이 충만하다 느낀 이분들에게 손길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 분명 방법이 있을터.

쉽지는 않겠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리면서 인내하자구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p.s. 아, 연극 좀 끝내자…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이임사 전문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권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2년 8개월 남짓 전인 2006년 10월 30일,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는 결의를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앞당겨 떠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밝혔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건대 새 정부의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강한 책임을 통감함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당초 취임의 변에서 말씀드렸고,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저는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평범한 소신을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으로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업무수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며, 위원회와 ‘긴장어린 동반자’의 관계인 시민사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과 성의로 자료제공과 홍보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고, 제 스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소신과 노력은 극단적인 분리와 대립이 항다반사가 되어버린 세태 아래 빛을 잃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는 일상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정권교체기의 혼탁한 정치기류에 막혀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근거나 법적 업무와 권한에 대한 성의 있는 이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몰상식한 비판, 무시, 편견, 왜곡의 늪 속에서 갈무리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중에 얻고 쌓은 자신의 소회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금언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먼 장래를 기약하면서 홀로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감히 몇 마디 당부와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부하듯이 한동안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경이로운 나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는 군사독재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대다수 국민이 일상적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행태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성취는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근래에 들어와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다시피 던진 충격적인 고백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국제사회에 나가보니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다.”는 유엔 수장의 솔직한 고백이 곧바로 국제인권지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서글픈 현실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부 관료나 국민의 숫자도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권의식은 과거에 자행되던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와 같은 노골적인 인권유린의 악몽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선진사회를 향한 전향적인 발돋움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고귀한 가치는 정권의 교체나 연장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의 교체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코 국민은 인권의 탄압이나 후퇴를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앞선 정권의 실정의 유산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반된 필연적인 변화로부터 구분해내지 못하면 때대로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선진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반이 지난 이날까지 그 장점이 만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느낀 소감은 적어도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신정부의 정식 출범에 앞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이명박대통령이 추진할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입안했던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으로 독립기관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국내인권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기에 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1993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부응하여 설립된 기구라는 것, 권고결의 당시에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한 유엔위원국이 5,6개국에 불과했으나 15년이 지난 오늘에 120개국으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탄생했을 기관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인권의 추세에 둔감한 정부이기에 지난 3월 말에는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한 절차 없이 유엔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조차도, 위원회를 특정목표로 삼은 명백한 보복적인 탄압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불의에 앞장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실로 깊은 비애와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나라, 내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깊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내 나라, 내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임을 믿는 저이지만 그간 빚어진 실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세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습니다. ‘청구인 국가인권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취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입장이 다를수록 요구되는 정부기관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임은 한 사안에서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부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본연의 소임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고언을 드립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전래의 별칭이 상징하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권능은 실로 막강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짊어져야할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다수의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언론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생명이 업무의 독립성에 있듯이, 언론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의 보도에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도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양식이자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이른바 ‘북한인권’이나 ‘촛불집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 오해, 사실왜곡과 같은 부끄러운 언론행태는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간의 존엄을 숭상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철학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의 재직 중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독립기관의 장의 직을 수행한 행운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지 못한 특권과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단 한 차례도 이명박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무능한 인권위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제 개인의 불운과 치욕으로 삭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께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동료들께 감사를 드리고,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린하면서 강행한 정부의 폭거로 인해 창졸간에 직장을 잃게 된 동료직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의연하게 걸어갑시다.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

모두에게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의 축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8일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