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부딪여야하는 상황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이 몇차례 있었다. 평소 익숙한 수학과 물리와 전혀 다른 영역, 프로그래밍이 보여주는 결과에 넋을 잃고 매료된 ‘순간’들. 그 중 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고1 전학 간 새로운 학교에 ‘이합’이라는 녀석을 수학 교실 안에서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귀에 달린 사마귀를 만지작 거리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이합은 남들보다 2년 빠르게 진학한 영재였고 당시 학교의 모짜르트였다. 그리고 그가 항상 지니고 다닌 Texas Instrument사의 TI-82는 모짜르트의 피아노였다. TI-82는 공학용 계산기로서 사칙 연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계산기였다. 사칙 연산 외에도 그래프 출력 등등 놀라운 기능들이 많았는데 (고2 때 출시된 TI-89는 심지어 정적분마저 풀었다) 이합은 자신만의 ‘프로그램’이란 짜서 이를 TI-82 안에 설치했다. 이합은 계산기에 질량, 각도, 힘, 시작 시간을 넣고 몇초 후에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 자동으로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짰던 것이였다. 멋지다.

하지만 그런 이합을 1년간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내 평소 사용하던 MS 워드 프로그램과 이합이 짜는 TI-82 ‘프로그램’이 같음 원리로 작동할 것이라는 연결 고리를 미처 만들지 못했다. 직접 못하더라도 호기심으로나마 이합에게 ‘야, 그거 어떻게 만드는거냐?’ 하고 한번쯤 물어봤으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텐데… 뒤늦게 대입 준비하기 급급한 고등학생 입장에서 시험 때 쓸 수 없는 계산기 사용 맛 들였다가 나쁜 버릇 들까봐 시작조차 안했다고 말하면 궁색한 변명일뿐 그보다 호기심은 있었으나 나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부끄러운, 하찮은 자존심이 주된 원인이였다. 실로 난 졸업할 때까지 이합의 프로그램을 끝까지 받아보지 않고 직접 손으로 푸는 방법을 고수했다. 만일 프로그램을 한번이라도 직접 짜봤더라면 수학적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 역시 짤 수 없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병행함으로서 나의 수학적 능력이 저해되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을텐데 말이다.

그 이후로도 프로그래밍을 접할 크고 작은 기회는 여러차례 있었으나 가장 강렬했던 ‘순간’에 한번 등 돌린 나에게는 다른 순간들을 기회 살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이합이 만든 같은 작은 프로그램류가 최소 70만개, 개중에는 “10분 후에 도착” 문자를 아내에게 원터치로 보내주는 짜투리 앱부터 시작해서 1조짜리 사진앱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수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된 세상이 도래했다. 그런 분위기에 흥하여 ‘어디 나도 한번!’ 외치면서 주변 개발자 모아서 시작한 앱개발 사업은 제대로 말아먹지도 못한채 떠밀려 이제는 돈도 없어 폐업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었고 그 결과 내가 얻은 배움이 하나 있다: ‘프로그래밍은 셀프.’

얼마 후,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대뜸 ‘얼마나 더 괄시를 참고 견딜 작정인가?’ 생각에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도무지 견딜 수 없던 그 ‘순간’, 난 벌떡 일어나 킨들로 책 두권을 주문한 후, 뭔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주판 두들기고 평가부터 하려드는 요즘의 나를 버리고 마냥 신기해하고 일단 부딪혀 보던 15년 전 고등학교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드불, 까치머리 출근한지 몇달이 지난 오늘도 이 ‘순간’을 또 놓치면 다음 순간은 언제 또 올지 모를테니 꼭 붙들라고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다. 물론, 30 넘은 내가 이제 프로그래밍을 배운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냐만 일단 호기심과 배우는 즐거움만이라도 되찾은 것이 어디냐며 자위한다.

Airnimal C 후기

2011년 7월 9일부터 19일까지 약 10일에 걸쳐 르벨로 샵에서 제공하는 Airnimal C를 시승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비가 많이 오던 주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총 3회 – 르벨로 샵 오고 가는데 2번과 한강 따라 종합운동장에서 남산까지 한번 다녀온 것에 국한되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도 상황인지라 제한된 후기를 올리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후기를 작성하기 앞서 제가 자전거를 평가하는 기준을 먼저 정의하자면

  1. 가격대 대비 성능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는 성능 얘기 하나만으로도 주관성이 충분히 개입되는 상태인데 상대적으로 달리 느끼는 돈의 가치마저 공식에 개입할 경우 점점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는 개인적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평소에 Surly LHT라는 편한 투어링 자전거를 즐겨 탑니다. 그런 탓인지 편하고 자전거를 밟는 느낌 자체가 즐거운 것을 우선시 합니다.
프레임
에어니멀 C를 보는 제 첫 인상은 미니벨로를 좀 더 빠르게 타려고 무척 애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니벨로답지 않게 못생긴 24인치 바퀴, 직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길게 뽑은 프레임 등등 첫 인상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인상은 입문용 로드 프레임으로 종종 사용되는 7005 알루미눔 알로이 프레임이 채택된 점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 되었습니다.  프레임 용접이 매우 꼼꼼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만 미관상으로 기계적 일관성보다 사람 손 많이 탄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다소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있습니다.  케이블은 프레임 밑으로 처리 되었기 때문에 케이블로 인한 불편함은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접기
접기 보다는 앞바퀴 떼어서 붙이는 형식으로서 분해에 가까운데 과정이 다소 오래 걸릴지언정 어렵지 않습니다. 안정장치도 마련 되어있기 때문에 손 쉬웠습니다.
라이딩
높은 싯포스트, 24인치 바퀴, 프론트 서스펜션이 없는 탓인지 평지에서 힘을 잃지 않고 페달 밟는 느낌이 무척 좋습니다.  하지만 프레임을 고정하는 클립이 다소 약하기 때문에 타면서 조금만 언덕을 오르거나 거친 길을 타면 덜컹 거리는 현상이 종종 일어납니다. 편한 자전거를 추구하는 제 입장에서 이게 가장 거슬렸습니다. 뒷부분에 스프링 장치를 좀 더 개선하여 진동과 쇼크를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때마침 BMC 시승할 기회!

평소에는 투어링 (Surly LHT) 타고 편하게 분당에서 종합운동장 거쳐 선릉역까지 출퇴근하지만, 내 마음 한켠에는 로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다.  맵시 있게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 Orbea와 BMC를 놓고 고민 중인데 때 마침 BMC를 시승해볼 기회 발견! 작년 제주 돌 때 한라산 옆구리를 올라타서 다운힐 내려왔을 때 기분을 떠올리면, 코너링 우월하다는 BMC가 무척 기대된다.  조만간 떠나게 될 7월 27일~31일: 히로시마에서 오사카가는 코스는 우선 투어링 자전거로 완주한 후, 한국에 돌아와서 BMC를 타보고 싶다. 가급적이면 (그동안 우천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한) 양수 – 춘천 코스를 꼭 가보고 싶다.

BMC SLR 01, 꼭 시승 해보고 싶다!

2011 하계 양수-춘천 라이딩 코스

2011년 8월 춘천 라이딩의 목적은 2가지:

  1. 강원도 방면 자전거 코스를 뚫어보겠다는 마음. 앞으로 강원도 자전거 여행이 활성화 되리라 예상함.
  2. BMC SLR 01 시승

코스를 좀 더 설명하자면 첫째 날: 양수역에서 춘천 조금 못 미치는 강촌 (삼악산 밑에)까지 갈 예정. 거리는 약 100km으로 추측되며 펜션에 짐 푸르고 BBQ 먹을 예정.

둘째 날:

춘천까지 이동한 후, 춘천 – 화천 – 배후령 순환 코스 (약 82km) 돌 예정. 오봉산 근처에는 업힐도 있고 하니 자전거를 이리저리 테스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올레 올레 올레, 세나, 세나

아빠 밑에서 얌전히 삼십살이나 처먹은 햄릿이 클로디우스를 찔러 아비 죽음을 복수했고 동생에게 “울지마라. 20세에 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말 남기고 죽은 수학자 갈루아를 떠올려 볼 때 34살이면 살면 살만큼 살지 않았을까? 단, 죽음을 앞두고 수학적 난제 해결이든, 회개든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를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변화가 이루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아참, 그리고 역대 최고 F1 드라이버 중 하나로 꼽히는 아일톤 세나는 34번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어느 하루, 산 마리노의 F1 코스 돌다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아일톤 세나가 죽은지 일년 지난 해, 당시 나와 같이 학교 다니던 브라질 애가 아래 위로 검은 상복을 입고 왔다. 물어보니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죽은지 일년된 날이라고, 그 사람 이름은 아일톤 세나라 말해줬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머리 속에서 브라질은 축구만 하는 나라, 독일은 자동차만 만드는 나라이기 때문에 브라질 애가 축구 선수가 아닌 사람을 위해 상복을 입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독일인 슈마허가 얼마전에 F1 그랑프리 우승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친구의 열띤 아일톤 세나 찬양을 듣고 난 후, 슈마허는 세나가 사라졌기 때문에 우승했다는 즉, 호랑이 대신 여우가 왕노릇하고 있다는 그 친구 말에 설득 당해버렸다. 그 이후, F1에 대한 관심을 조용히 끊었다. 결국 진정 챔피언다운 챔피언, 세나가 첫 우승한게 29살였으니 30 언저리에 인생 한번 바뀔 타이밍이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최근 세나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그의 팀 동료이자 최대 라이벌였던 알랭 프로스트, 15년 베테랑 기자, 업계 관계자 인터뷰들과 당시 남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이 영화를 통해 88년 89년 연속 프로스트 – 세나 충돌 사건 (같은 코스, 둘다 우승 결정 짓는 경기) 정황, 뒷이야기를 포함하여 그동안 어렴풋 봤던 세나의 뒷모습이 아닌, 다른 면을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를 통해 느낀 점: 예전의 나는 프로스트와 세나가 같은 팀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성격이 먹같아서 불필요한 충돌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상반된 성격 소유자들이 서로 갈길 가다보면 스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꼬꼬마 카트 시절이나 공간 보이면 충돌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습관은 타이어 값만 1억하는 프로 레이싱 세계에서는 관례에 어긋날 뿐더러 결코 통용 되어서는 안될 논리였으나 세계 최정상급 세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휠 잡는 매 순간마다 그는 카트탈 때나 무명일 때나 챔피언일 때나 늘 앞선 사람과 자리를 바꿔야 했고 빨라야했다. 설사 앞선 사람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계산적인 드라이빙 스킬을 기반으로 3회 우승한 알랭 프로스트이며 덫 놓듯이 일부로 빈틈을 보였다고 의심될지라도 일단 찔러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앞선 사람과 자리를 바꾸는 것이 그에게 일종의 사명이였다. 더 이상 자리 바꿀 사람 없을 때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결승점 얼마 안두고 부딪혀 1등을 놓치는 사람이니 말 다했다.
사람은 언제 바뀌는가? 30? 30이란 숫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저들은 그 때 마지막으로 바뀌었을 뿐.

마찰, 고집

마찰과 연속된 싸움: 자전거를 타는 내내 드는 생각이다. 타이어와 지면, 시속 20km 이상 내면서 발생되는 바람과 나, 모든게 마찰이다. 굳이 자전거 같이 스피드 내는 종목이 아니라 등산처럼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운동 또한 마찰을 이겨나가는 것 아니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같은 마찰이라도 자전거와 등산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둘 다 정신없이 뒤바뀌고 형식적 세상과 노선은 다를지라도 등산은 산고양이의 야성적 일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자전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연어 같은 고집에 가깝다.

이 고집은 자신이 생활하는 곳, 출근길에서부터 시작한다. 추운 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부딪히게 될 위험 요소들 – 자전거 도로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울퉁 불퉁한 도로 상태, 난폭한 운전수, 스마트 폰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한치 앞을 못 보고 도로 건너는 중고등학생들  – 이와 같은 여러가지 위험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이성적 판단은 “얌전하게 남들처럼 전철타고 출근해라” 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멀고 어려운 길을 택하려는, 그런 고집이다. 생전 보지 못한 Eddie Merckx (사이클링 명선수)가 70년대에 입던 Molteni 운동복 혹은 30년전 클래식 자전거 프레임이 깔끔하고 멋있다면서 윗돈 얹어 수집하려는, 그런 고집이다. 반면 아직까지 등산 다니면서 “산행은 송림 수제 등산화를 신어야 제맛이지!” 하는 사람 보지 못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그렇게 바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