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Chatterley’s Lover and my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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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다시 읽고 있다. 채털리 부인하면 일부는 낯뜨거운 정사씬을 떠올리겠지만 실로 내가 손꼽는 최고의 反전쟁 소설 중 하나이다. 내가 매우 동감하는 Doris Lessing의 서문을 요약하자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세계 1차 대전을 간접 경험한 작가, D.H. Lawrence는 인간이 서로에게 하는 폭력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전쟁과 산업화로 인하여 파괴되고 무능력해진 남성을 동정하고 슬퍼했다. D.H. Lawrence는 결핵으로 인해 성불구자가 된 자신과 조국을 참전 후 반신불구가 된 Clifford 에게 투영한다.  (결핵은 D.H. Lawrence에게 두가지 모순된 상흔을 남겼는데 하나는 성적 욕구 충만한 정신과 성불구인 육체였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영국, 인류에게 외친다 – 원시로 돌아가자! 남녀간의 조화, 사랑, 섹스가 계절과 같은 거대한 생명의 주기 – circle of life -가 돌고 돌던 원시로 돌아가자! 봄에는 풋풋한 꽃과 향이 가지런히 풍기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처럼 생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 즐기고 가을에는 묵직하리 잘 익은 열매 맺고 겨울은 꽃잎을 떨군채 봄 기다리며 꿈틀거리는 자연 모습 그대로 남녀의 섹스가 닮아가기 애타게 원한다. 이 것이 진정한 남녀간의 화합이고 사랑이고 섹스다. 계절 없는 차갑고 기계적 전쟁과 산업화는 이 모든 것을 파괴하며 삶의 정수를 앗아갔다.

“Connie went slowly home to Wragby. “Home!” It was a warm word to use for that great weary warren. But then it was a word that had had its day. It was, somehow, cancelled. All the great words, it seemed to Connie, were cancelled for her generation: love, joy, happiness, home, mother, father, husband, all these great dynamic words were half-dead now, and dying from day to day. Home was a place you lived in, love was a thing you didn’t fool yourself about, joy was a word you applied to a good Charleston, happiness was a term of hypocrisy you used out of cant, to bluff other people, a father was an individual who enjoyed his own existence, a huband was a man you lived with and kept going, in spirits. As for sex, the last of the great words, it was just a cocktail term for an excitement that buked you up for a while, then left you more raggy than ever. Frayed! It was as if the very material you were made of was cheap stuff, and was fraying out to nothing.

(A Propos of “Lady Chatterley’s Lover”, 62:7-21)

여기서 잠시 책을 내려놓고 – what of now? 21세기는 작가가 갈망하던 tender-hearted fuckin’를 “함 대줘” 같은 차갑고 무감각적 섹스로 대치해버렸고 전쟁 대신 민주주의 곧 무관심이 사회를 덮쳤다.  체게바라는 관광상품용 티셔츠 도안이 되버렸고 혁명은 낭만주의적 곱씹음질이 되버렸다. 이런 핵겨울 속에서 어떻게 나는 그녀와 서로 뜨겁게 부둥켜 안고 이 곳 이 시간에 당당히 서있었노라 외칠 수 있을까? 그 것은 생명과 영원 두개의 기둥 위로 지어진 지붕 밑의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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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ael – Auschwitz – Holoca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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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Gaza 폭격 관련되어 “유태인들은 진작 수용소에서 씨를 말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식의 글 쓰는 사람이 한두명 아닌 것을 보고 섬뜻해졌다. 이스라엘은 자기방어를 넘어 필요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UN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있는 바지만 “히틀러가 미래를 예견했던건가 -_- ” 라니… 대체 이 사람들은 역사책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던 것인가.

유럽 생활 8년동안 여기 저기 많은 관광 장소를 가봤지만 그 중에서 내가 콱 메어지도록 감동적이거나 가슴 아프던 장소는 몇군데 안되는데 그 중 하나가 Auschwitz와 Bierkenau이다. 아우슈비츠 정문에는 그 유명한 Arbeit macht frei 문구가 붙어있다.일하면 자유를 준다는 뜻인 그 문구를 보면서 그 말을 순수하게 믿고 들어선 유태인은 몇이였고 그 중 몇이나 살아서 돌아갔을지 상상해보았다.

뼈만 앙상한 시체들, 90cm x 90cm 독방, 독가스실, 인간재가 휘날리던 굴뚝, 참혹한 절망을 Elie Wiesel를 비롯하여 숱한 작가들이 잘 담아냈으니 (꼭 읽어봐라)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커다란 컨테이터 4-5개 규모의 방이 유태인 머리카락으로 가득했을 때였다. 이 것을 모아서 코트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일제시대 때 삽살개 잡아서 군용모자 만들었다는 얘기 듣고 삽살개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반면 – 이 때 측은한 마음은 사람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되 그 희생양이 된 삽살개들에게 안타까움에 가깝다 – made in Auschwitz 코트는 인간의 몸에서 추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빼내고 활용하는 인간의 영특함(?)에 질리게 한다.

내가 그 인류의 일원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두렵다. 내가 60년전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과연 그 때 하얀장미단처럼 당당히 맞서싸우다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면 99% 독일인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혹은 Milgram 실험처럼 상부에서 날 시켰다는 핑계 대면서 동조했을까? 그 것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어떠한 이유를 들더라도 – 설사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업과 각종 횡포로 독일을 착취했던간에 또는 하나님에게 선택된 민족이라 뽐내는 모습이 아니꼽던간에 -600만명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 시킬 수도 없겠거늘 이 Arbeit macht Frei 정문 안에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씨앗을 말린다”는 말이 입에 차마 담기에도 무섭고 끔찍한 말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참혹하다, 너무나 참혹하다.

유럽 여행 다녀온 애들 중에서 폴란드 근방 다녀왔다는 사람 있으면 혹시Auschwitz를…? 하면서 조심스레 물어보지만 좋게 좋게, 모처럼 큰 돈 들여서 유쾌한 여행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 실로 다녀오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좀처럼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 여지껏 Auscwhitz를 다녀왔다는 한국 대학생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외국어만 된다면 하루 빨리 글로벌 무대에 나가서… “하며 떠벌리는 애들은 많이 봤어도 외국에 누가 살고 있으며 무엇을 겪어왔으며 어떤 말을 삼가해야하는지 즉, 외국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 갖고 공부하는 한국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글로벌 인재를 운운할 때가 아니라 하루 빨리 글로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야지 – 나부터 시작하여.

관광 여행의 본래 취지인 ‘타지의 토지, 풍속, 제도, 문물을 관찰한다’ 에 적합한 목적지로서 나는 여지없이 Auschwitz를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