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ulse is counter-produ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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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살인사건 범인 강호순씨가 그 외 다수의 여성을 무작위로 죽였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최근에 읽었다. 끔찍하다. 관련 기사가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들끓는다. 개중에 범인 살가죽에 칼집으로 1센치마다 상처내서 황산 붓자, 광화문에 매달아 돌로 때려 맞춰 죽이자 등등 상상할 수 있는 극한의 죽음을 선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더 끔찍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강호순씨 사진을 공개하였고 그에 대한 설명은 여기. 기사에 의하면 대법원은 “진실한 사실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면 당사자의 신원을 공개할 수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명예훼손죄 관련 조항에 의하면 (형법 제307조, 형법 제311조,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죄 )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자는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는데 대법원의 판결과 명예훼손죄가 정면충돌하지 않나? 법원의 입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반인륜적인 범죄자에 한하여 일부 사람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자의 기준은 무엇이지?

살인범과 나 둘 사이에 유일한 차이는 (in the words of eternal Jim Carrey) “murder is COUNTER-PRODUCTIVE!” 라는 목소리가 생생하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동영상 1:00~). 여자를 보면 살인충동이 솟구쳐 오른다는 범인은 그 충동적 목소리에 귀를 좀 더 귀울였던 것 뿐이고 나는 부모님, 학교, 정부가 세운 가치관에 좀 더 힘을 실어줬을 뿐이고. 그리고 현재 힘이 실린 무게 중심을 다른쪽으로 – 폭력 혹은 쾌락 – 밀어버리기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명목하에  “잠시 눈 감아줄게” 하며 면책권을 받거나 남의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은 얼마든지 폭력과 쾌락을 쫓을 준비가 되어있다.  Reginald Rose의 Twelve Angry Men에서 배심원 #10이 급속도로 불어나는 소년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무고한 피고인에게 줄창 사형을 외쳤듯이, 그리고 한국 유학생들이 동남아에서 섹스 파티 즐기듯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티즌 중 누구는 “사람을 동물 다루듯 잔혹하게 살해한 자에게 인권이란 단어는 사치”라 말하지만 개인을 사회적 위험 요소라는 이유로 권리를 박탈하고 괴롭혀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안에 파괴적 본능을 남에게 전가시키기 위한 핑계이자 우리가 살인범보다 더 낫다는 교만이다.

인권, 헌법과 같은 가치를 정황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 적용할 수 있다면 그 것은 가치가 아닌 취미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문화가 하루 빨리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 더; 반인륜적 범죄자라는 제한적 범위가 반국가적 범죄자까지 확장될 때 과연 누가 누구를 보호해줄 것인가 한번 염두에 뒀으면 한다.  그때도 너 안전할까?

2 thoughts on “impulse is counter-productive

  1. 재미있는 포스트네요. 먼저 이번 사진 공개는 명예훼손이라기 보다는 초상권 침해 입니다. 따라서 명예훼손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인권이나 헌법은 ‘유연하게’ 적용이 되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헌법이 한번도 고쳐쓰여지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들은 헌법의 기본 의미를 해석해서 유연하게 적용하기에 그럴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인권침해가 옳지 않다고는 하지만, 인간을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가두는것 부터가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인권의 침해입니다. 어느선까지 침해를 하고 말고 하는것은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달려있겠죠.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것이 아니라 봅니다. 시간이 나면 제가 써 놓은 포스트를 한번 읽어보시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합니다.

    • 우선 답변 늦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지적하신대로 명예훼손이랑 무관하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제 의견을 정정해야겠군요. 아무래도 이 문제는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입게 되는 피해에 대해서 한 개인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의견에 대해서 합의를 보지 않으면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이 입을 수도 있는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에 사형제를 주장해서 안전을 도모하려는 사람 vs. 보복으로 상처가 아물지 않으며 용서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도모하는 사람.
      아 하나 덧붙이자면, 혈세 낭비하는 것으로 치자면 우리들 사이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정치인/공무원, 기업인, 종교인 등등 심한 사람 많을텐데 이들부터 예산순으로 나래비 세워서 척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따라서 혈세 낭비한다는 말은 적용되기 힘든 논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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