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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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Wagner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뒤흔들고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사랑, 용기, 영웅을 통해 완성되 가는 인류의 모습을 그렸듯이 이 시대에 만족치 못하는 내가 바라는 인간상, 초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독일 신화에 기반 두었던 R. Wagner를 비롯하여 F. Nietzche, B. Shaw가 그리던 초인을 여과 없이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터 (또는 초인은 국경과 시대마저 초월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환경과 역사에서 ‘걸맞는’ 초인의 모습은 어떠할까? 아니, 사회 중심적인 동양 특성상 초인이라는 개인적 개념이 과연 유효하기나 할까? 요순시대와 같은 이상적 사회를 그려야하지는 않을까?

우연찮게도 우리나라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은 홍익인간 –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함 – 이다. 이 짧은 말에도 여러가지 인간상이 함축되어있다. 예를 들어서, 널리 이롭기 위해서는 기회주의적 소시민이 설 곳이 없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인본주의적 사상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기 요구했던 사례와 같이 종교적 믿음과 충돌을 일으킬 여지가 있기도 하다. 특히나 한국적 인간상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 한限은 어찌할 것인가? 미국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개척자 (또는 약탈자) 를 꼽는다면 나는 한국인의 한限을 꼽는다. 고구려 이후로는 항상 강대국 틈 바구니에 끼어 등 터지는 새우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제 식민지 시대, 6.25, 4.19 혁명, 유신정권, 5.18 민주항쟁, IMF 등등 늘상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위태하며 당당해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였다고 평한다면 조상들이 섭섭해할 수도 있으나 영역 확장과 같은 능동적 파이 늘리기 보다는 좁은 국토 안에서 수동적 점유율 싸움에 좀 더 초점을 맞쳐왔다는 것이 김사실 최트루.

‘빛의 파동과 입자의 이중적 성격을 띄운다’와 같은 모순적 내용을 물리학과 3학년 때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였던 것이 생각난다. 마치 진도 얼른 빼자고 보채는 남자친구마냥 양자역학 가르치는 교수님의 강요 – 빛의 이중성을 그저 받아들이라는 – 에 미약하게 끌려가기도 했지만 설사 시간이 주워졌더라도 이 모순을 진심으로 어찌 껴안아야할지 몰랐을 것이다. 물리야 책 덮으면 잊을 수 있겠지만, 양쪽 의견이 대립할 때 느끼는 이 감정, 이 고뇌를 어찌할 것인가? 이마저 물리책 싹 덮고 잊어버렸듯이 넘길 것인가? 그 것은 이웃, 국가,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는 것일테다.

한을 극복해내는 초인의 조건을 찾자.

Update:

아일랜드라는 국가가 한이 많은 나라 중 하나 아닐까 – 이 나라의 예술을 좀 더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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