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mise] To be tormented, as a d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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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거쳐온 길을 뒤늦게나마 따라 밟아가면서 나는  Robert J. Oppenheimer의 발자취를 느꼈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 두 인물은 같은 문장 안에서 언급되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 없도록 대조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노무현 전대통령, 특히 그의 말로에서 Oppenheimer 냄새가 낫을까? 노무현 전대통령은 차라리 Georges Danton이 더 흡사한 인물 아니였을까? 노무현 전대통령 ::: Oppenheimer 이 것이 단지 순간적 착각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두 인물 사이에 연결고리를 느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우선 각 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Oppenheimer는 미국을 (=자신을 중심으로) 20세기 물리학의 중심지로 격상 시켰고세계 2차대전 이후 굵직한 미국 물리학자 중에서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물리학자가 없을 정도의 아버지격 물리학자이다. 그는 네덜란드 학교에서 물리학 강연하기 위하여 6주 안에 그 나라 말을 터득했고 그 외에도 Bhagavad Gita를 비롯한 각종 고전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서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터득하고 암송하던 것을 보아컨데 그는 언어의 천재이기도 했다. 핵폭탄 첫 실험 전날, 그는 Bordelair의 시를 읊으면서 밤을 지샜다. 그를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으로 임명한 Leslie Groves 중장이 말하길, “He’s a genius. A real genius… Why, Oppenheimer knows about everything. He can talk to you about anything you bring up. Well not exactly. I guess there are a few things he doesn’t know about. He doesn’t know anything about sports.”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물리학 자체보다  – 무척 바랬으나 역사에 길이 남을 물리학 이론을 결국 남기지 못한다 – Manhatton Project를 진행하면서 가장 빛을 발했다. 핵폭탄을 만든다는 것이 이론적/공학적 측면으로서 어려운 과제이기도 했지만 군 관계상 엄중한 보안이라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특히나 규율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애국심이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천재형 구성원을 이끌고 독일보다 앞서서 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동시에 완성 후 필연적으로 이어질 대규모 살생에 대한 죄책감까지 얹혀진 최악의 조건에서 Oppenheimer는 원자폭탄을 만들어낸다. 프로젝트 진행하는 내내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일도 많았다. 정부로부터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 받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전쟁 일어나기 전에 잠시 공산당에 기부하기도 했으며 그의 동생, 연인, 아내는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24시간 감시 및 도청 당했으며 전 애인은 쓸쓸히 자살, 아내는 알콜 중독자가 되어 마음을 어지럽혔으며 그는 개인적 감정을 다 접어두고 오직 의무를 수행한다는 자세로 임하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담배를, 안에는 사명감이 그의 유일한 원동력이였다.

Father of atom bomb

Father of atom bomb

세계 2차대전 후, 그는 미국 대중에게 영웅으로 알려졌다. 그는 핵폭탄의 아버지였던 만큼 폭탄 사용에 찬성이였지만 자신이 낳은 무시무시한 무기의 파괴력을 그 어느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핵폭탄 양산, 수소폭탄 제조를 막고자 하였다. 따라서 원자력 위원회 일원이라는 자신의 위치와 새로 얻은 지지도를 활용하여 철학자-과학자-정치인이 되어서 핵폭탄의 사용법을 규제하는 국제 기구를 설립하고자 힘 썼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순수함이 있었다. 하지만 전후 미국의 상황은 그의 의도와 다르게 급전했다: 소련과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더니 맥카시즘에 이르기까지 하며 대중의 두려움을 자신들의 목적 달성 수단으로 사용하기 원하는 집단은 가로막는 Oppenheimer에게 집중포화를 퍼붇는다. 선봉장격이던 Lewis Strauss와 Edward Teller 등등은 Oppenheimer에게 오래 전부터 반감을 가져왔던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27시간에 걸친 청문회를 통해서 Oppenheimer를 공격한다. 변호사는 그에게 묵비권을 주장할 것을 여러차례 권유했으나 그 때마다 자신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그리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꼬투리가 잡히게 된다. 상대는 Oppenheimer이 Los Alamos 소장 되기 전부터 준비해놓은 감시 파일, Oppenheimer의 변호 전략 도청, 편향된 배심원 배치 등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준비했기 때문에 Oppenheimer을 완전 바보같이 보이게 함으로서 그의 신뢰도를 완전하게 붕괴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Oppenheimer는 국가 안보의 위험요소라는 결정이 내려지고 핵 관련 비밀 정보 문서의 취급 허가를 빼앗긴다. 과학자이자 정치가로서 활동하기 원했던 그로서 사형선고이기도 했지만, 청문회 이후 더 이상 그의 칼같은 지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찾아볼수 없었다.

국가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헌신한 그가 분쇄되야 했던 이유가 뭐였을가? 단순히 특정 몇몇 인물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그토록 망해야했을가?나는 그가 패퇴한 원인을 Lewis Strauss와 Edward Teller와 같은 특정 이해 관계 맞물린 인물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한다: 그 사람의 내적 결함, 그리고 삶이 우리로부터 요구하는 자세에 대한 근본적 오해가 비극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내적 결함이라 함은 그가 약하다는 점을 가르키는 말이다. Oppenheimer는 선천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고 그 것을 대답해주기 위한 답을 끊임없이 외부에서 찾아왔다. 그가 천재인 이유에는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자신의 결함을 숨기려고 갑옷을 두르고자 했던 조바심이 큰 부부분을 차지했다. 그가 Los Alamos의 구성원을 잘 이끌 수 있던 것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 때문인데, 그 또한 자신이 두려움에 떨고 약한 모습을 남에게 투영시켰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순수함, 기타 정치가와 달리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았기에 세상이 그를 부러트린 것 아닐까 생각한다.

두번째 이유를 설명하기 앞서서 Oppenheimer가 자주 인용하던 Bhagavad Gita를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인즉, 같은 혈육간의 전투를 앞선 Arjuna가 – 트로이의 무적 용사 Archilles 동급이라 생각하면 됨- 머뭇 거리자 Krishna는 Arjuna가 사물에 대한 이해가 잘못 되었음을 알려주고 Arjuna의 전차를 이끄는 Krishna가 왜 싸워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Bhagavad Gita 내용 전체를 다소 무리하여 축약하자면, 전쟁을 하나의 비유로 보라고 가르친다. Krishna는 세상의 이치, 전쟁터는 우리의 삶, Arjuna가 탄 마차는 몸, Arjuna는 고통스러워 하는 영혼, 그리고 Arjuna가 상대할 왕과 100명의 아들은 악의 축으로 생각할 때 마차는 잠시 전쟁터에서 사용할 뿐이며, 상대하는 적 또한 개개인의 감정을 갖지 않고 주어진 일, 사명을 묵묵히 해낸다는 생각으로 임하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Gita를 양심없이 폭력을 행하는 면죄부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견디고 맞서라함을 알려준다. Bhagavard Gita를 평생 읊은 M. Gandhi는 비폭력적 투쟁에 평생을 바쳤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사회주의, 평등과 같은 개념이 근본적으로 옳지만 그러한 최근들어 개념이 포장된 방식이 나를 방심하게 하고 나 역시 고민하지 않은채 듣기 편한대로 받아들이고자 해왔기 때문에 그릇된 평등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에게 하나의 지상 과제가 주어줬다면,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법 안에서 주어진 임무는 견뎌내고 인내하라. 앞서 말했던 내가 느꼈던 Oppenheimer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사점은 인권/민주주의 회복, 평화 달성 등 세상과 끊임없이 싸웠다는 점이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꺾이고 패퇴한 사람들의 안타까움인 것이다. 이 것은 누구에 대한 탓도 아니요, 그저 삶의 법칙이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다.

“il faut d’abord durer.”

“우선, 인내해야 한다.”

인내야 말로 고결한 영혼의 척도이다. Don’t worry, be happy라고 외치는 새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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