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 만나는 것이 즐거운 것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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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Leo Tolstoy, opening sentence of Anna Karerina

어제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떠오른 생각: 오래전 그 친구는 세상 사람이 재미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등등에 대해서 열심히 의견을 피력했는데 이에 대해서 나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얘기다, 미국을 보라, 폭동 사태가 일어났을 때 반응을 봐라, 글로벌라이제이션 허구다. 막상 상황에 부딪히면 형제애라는 말 쉽게 나오지 않는다’ 등등으로 반박했다. 나로서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일찌기 외국 경험 통해서 인종 차별, 집안 차별, 심지어 부모의 자동차 차별 등 이어지는 결과물로 와닿기에 누가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게 즐겁다’는 말의 진위성을 의심하게 된다. 과연 너가 진정으로 사람을 만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즐거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즐거울 뿐,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13년 외국 생활 통해서 도달한 결론이다.

톨스토이 선생 말씀대로 행복한 가정은 대부분 비슷 비슷하다. 험난한 바깥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같은 아버지, 기둥처럼 집안의 기강을 세워주는 어머니, 듬직한 첫째, 말썽꾸러기 둘째~(마지막-1)째, 애교덩어리 막내… 행복은 사람을 평범하게 한다. 반면, 불행한 집안은 제 각자의 방식으로 불행하기 때문에 다 독특하다. 아빠가 {바람 피워서, 강압적이라서, 아내에게 고민을 말할 수 없어서 …} 엄마가 {우울증에 시달려서, 남편이 말 안 들어줘서, 아이들에게 무관심해서, 시어머니에게 시달려서, …} 아들이 {성정체성을 고민해서, 아빠에게 반감 가져서, 누나 샤워하는 것 훔쳐본 죄책감에, …} 등등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을 안겠다는 다짐은 다양한 고충을 안고 이 것들이 그 사람의 성격/행동에 반영되는 모습 자체를 받아주겠다는 뜻이다. 그런 즉, 인간의 그 사람의 구질구질하고 추악함, 나약하고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 반사회적인 집착 등 인간의 한없이 구질구질한 부분까지 아끼고 포용하고, 인간 자체가 한없이 약함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하며 (하지만 시스템에 의해 악해졌다고 믿는) 행복의 추구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입장은 “넌 선함을 사랑하는 것이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냐.” 우리 마음 그대로 내보이면, 더 괴롭고 추악하다.  난 사랑이 육체적으로 괴롭다. 하지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이 이 지구에 놓인 나의 이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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