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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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치과에서 있던 일: 환자 대기실 자판기 옆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대뜸 내 옆에 있는 어머니께 나 방광염 있는데 뭘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뿌 ‘ㅅ’ 식의 질문을 하셨다. 어머니 왈, 물 드시면 좋을 것 같네요. 나 물은 하도 많이 먹어서 지겨워뿌 ‘ㅅ’ . 그럼 식혜 드시면  좋겠네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대뜸, 아 옛날에는 식혜가 참 맛있었는데…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한웅큼 푸시기 시작한다. 동전 꺼내지도 않는 것 보아하니 음료수는 애시당초 안중에도 없었고 당신 말씀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2시간 가까이 기다리느라 지쳐가고 있었으니 이어폰을 귀에서 뽑고 듣기 엄마와 할머니 대화를 옆에서 엿듣기 시작했다.

몇분이 채 안 지나서 할머니 스펙이 술술 나온다.  벽 건너편 병실에서 5천만원짜리 임플란트 치료 받고 계신 할아버지는 박정희 시절 공무원이셨고 아직까지도 사업하시면서 경제 활동 중이시며 할머니에게는 월 500만원 한도인 카드를 주셨다. 할머니께서 대학을 가고자 했는데 부모님께서 여자가 무슨 서울에서 대학이냐, 집 근처 조선대학교 (호남 출신이신 듯) 가라는 말에 화가 나서 아예 대학교를 가지 않았는데 그게 아직도 후회 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영어도 하시고 (영국 액센트와 함께 ) 일본어도 하시고 논어도 줄줄 읊는거 보아컨데 단순히 돈만 많은게 아닌 박식하고 멋진 할머니셨다.

짧은 시간 안에 크고 작은 이야기가 부지런히 오갔다.  맞벌이하는 며느리가 손주를 자신에게 안 맡기고 젊은 가정 주부에게 맡긴 이유가 단지 영국식 영어 발음 << 미국식 영어 발음이라면서 노한 상황이며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님의 대립과 저격 당하셨던 상황을 생생히 묘사해주는 등 정치, 역사, 가정학을 잘 엮어서 풀어내시는 모습을 보아컨데 엄마 옆에 앉았을 때부터 뚜렷한 목적-_-의식 있던  할머니였던 것이였다. 서로 얘기에 바쁘고 140자 트위터에 싸지를지언정남의 얘기는 도통 들어주지 않는 요즘 세상에 모처럼 잡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80세 가까운 이 할머니 – 폐경기 지난 것은 물론, 이제는 턱수염도 날법한  – 아니, 한 여자의 질투가 무척 인상적이였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 곧 사업을 시작하신 할아버지는 오늘날까지도 딱 한명의 비서를 두었다고 한다. 이제 나이가 40을 넘었는데 여전히 결혼 안했다고 하니 20대 청년인 내가 보기에는 30대 후반에 친 거미줄 이 굳어서 벽이 되지 않았을까 의아할 정도로 관심 밖 대상이건만 당신께서는 무척 신경이 쓰였는지 여비서가 마음에 안드는 점을 하나 둘씩 까발리신다. 예를 들어 월 500만원 카드 비밀번호를 할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데 그 비서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게 싫으시고 할아버지께서 하루종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핸폰을 충전하라고 비서에게 건네줄 때 할아버지 체온이 그 여자에게 전해지는게 너무 싫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비서 바꾸라고 계속 말하지만 이런 질투심 느끼고 있음을 직접 말하지 않으니 할아버지가 그 원인을 알 터가 없지. 설마 80 노친네의 미지근하지도 못한 체온이 질투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냐고.

문득 여자친구 애태운답시고 바쁜척, 다른 여자들에게서 자꾸 연락 온다 등등의 정보를 흘려 보내던 나의 예전 모습들이 우습고 찌질하게 느껴졌다. 정작 내가 의도한 질투심은 전혀 발동 걸리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너 내가 왜 화났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이에 당황한 나머지 내 죄스러운 의식 중에서 닥치고 떠오르는 것 허공에서 막 끄집어 말하곤 했다. 그럼 그럴수록 그녀는 더더욱 갈피 못잡는 내 행동에 우선 1차적으로 화가 나고, 자신이 미처 알지도 못했던 나의 결함을 발견하니까 더더욱 화를 내니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그냥 입 닥치고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 잘할게라고 한들, 맨날 그소리냐고 핀잔만 날라온다. 스킨쉽으로 해결하는 것도 상황이 그나마 좋을 때 얘기지, 시도 때도 없이 시도했다가는 몰상식한 짐승 취급 받는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도 뭘 잘못했는지 깨달지 못하면 말 없이 떠남으로서 남자를 벌준다.  여자의 마음은 오묘하고 깊기에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결국 남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란 여자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게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지, 남자가 여자를 고를 수 있다는 착각은 하루 빨리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초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던 것이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이임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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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권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2년 8개월 남짓 전인 2006년 10월 30일,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는 결의를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앞당겨 떠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밝혔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건대 새 정부의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강한 책임을 통감함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당초 취임의 변에서 말씀드렸고,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저는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평범한 소신을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으로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업무수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며, 위원회와 ‘긴장어린 동반자’의 관계인 시민사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과 성의로 자료제공과 홍보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고, 제 스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소신과 노력은 극단적인 분리와 대립이 항다반사가 되어버린 세태 아래 빛을 잃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는 일상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정권교체기의 혼탁한 정치기류에 막혀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근거나 법적 업무와 권한에 대한 성의 있는 이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몰상식한 비판, 무시, 편견, 왜곡의 늪 속에서 갈무리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중에 얻고 쌓은 자신의 소회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금언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먼 장래를 기약하면서 홀로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감히 몇 마디 당부와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부하듯이 한동안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경이로운 나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는 군사독재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대다수 국민이 일상적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행태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성취는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근래에 들어와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다시피 던진 충격적인 고백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국제사회에 나가보니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다.”는 유엔 수장의 솔직한 고백이 곧바로 국제인권지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서글픈 현실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부 관료나 국민의 숫자도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권의식은 과거에 자행되던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와 같은 노골적인 인권유린의 악몽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선진사회를 향한 전향적인 발돋움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고귀한 가치는 정권의 교체나 연장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의 교체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코 국민은 인권의 탄압이나 후퇴를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앞선 정권의 실정의 유산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반된 필연적인 변화로부터 구분해내지 못하면 때대로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선진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반이 지난 이날까지 그 장점이 만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느낀 소감은 적어도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신정부의 정식 출범에 앞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이명박대통령이 추진할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입안했던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으로 독립기관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국내인권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기에 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1993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부응하여 설립된 기구라는 것, 권고결의 당시에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한 유엔위원국이 5,6개국에 불과했으나 15년이 지난 오늘에 120개국으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탄생했을 기관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인권의 추세에 둔감한 정부이기에 지난 3월 말에는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한 절차 없이 유엔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조차도, 위원회를 특정목표로 삼은 명백한 보복적인 탄압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불의에 앞장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실로 깊은 비애와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나라, 내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깊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내 나라, 내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임을 믿는 저이지만 그간 빚어진 실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세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습니다. ‘청구인 국가인권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취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입장이 다를수록 요구되는 정부기관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임은 한 사안에서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부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본연의 소임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고언을 드립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전래의 별칭이 상징하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권능은 실로 막강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짊어져야할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다수의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언론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생명이 업무의 독립성에 있듯이, 언론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의 보도에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도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양식이자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이른바 ‘북한인권’이나 ‘촛불집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 오해, 사실왜곡과 같은 부끄러운 언론행태는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간의 존엄을 숭상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철학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의 재직 중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독립기관의 장의 직을 수행한 행운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지 못한 특권과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단 한 차례도 이명박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무능한 인권위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제 개인의 불운과 치욕으로 삭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께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동료들께 감사를 드리고,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린하면서 강행한 정부의 폭거로 인해 창졸간에 직장을 잃게 된 동료직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의연하게 걸어갑시다.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

모두에게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의 축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8일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경환

[premise] 연극, 참여,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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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e world's a stage (from As You Like It 2/7)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 At first the infant, Mewling and puking in the nurse's arms. And then the whining school-boy, with his satchel And shining morning face, creeping like snail Unwillingly to school. And then the lover, Sighing like furnace, with a woeful ballad Made to his mistress' eyebrow. Then a soldier, Full of strange oaths and bearded like the pard, Jealous in honour, sudden and quick in quarrel, Seeking the bubble reputation Even in the cannon's mouth. And then the justice, In fair round belly with good capon lined, With eyes severe and beard of formal cut, Full of wise saws and modern instances; And so he plays his part. The sixth age shifts Into the lean and slipper'd pantaloon, With spectacles on nose and pouch on side, His youthful hose, well saved, a world too wide For his shrunk shank; and his big manly voice, Turning again toward childish treble, pipes And whistles in his sound. Last scene of all, That ends this strange eventful history, Is second childishness and mere oblivion, Sans teeth, sans eyes, sans taste, sans everything.

셰익스피어는 우리 삶 자체가 연극이라고 그래서 우리 모두 각자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맞는 역할을 맡은 배우라고  말한다. 햄릿은 아버지 원수를 갚는 과정에 두 가족 – 클로디어스의 왕가와 폴로니어스의 가문 – 송두리 박살낸 비극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 – 자신만의 성 안에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방종하던 과거와 달리 궁정에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예의범절을 지키고 끊임없이 남을 속여야 하는, 다른 말로 독을 품어야 하는 지금 – 에서 고뇌하고 연극해야만 하는 원치 않는 배우의 길을 걷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다룬 연극이다.

흔히 말하길, 연극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표현한다고 말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면서 연기가 비로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즉, 우리는 여태까지 남의 표정과 습관을 잘 관찰하는데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의 재현하는 모습을 연기라고 생각했건만 셰익스피어는 추악하고 소심한 사람들이 남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모습 자체가 ‘연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세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클로디어스야 양심에 찔리니 햄릿을 지켜보았지만 폴로니어스는 원한 관계에 얽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간섭하는 버릇으로 햄릿을 방해한다. 굳이 칼부림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방해 받는다. 사탄은 본래 “방해하는 자”라는 모호한 의미를 지녔으나 이를 좀 더 이해에 돕기 위해서 하나의 객체로 형상화한다. 어떠한 길을 택하든 필히 이를 방해하는 존재는 있기 마련이다.

그 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 시키고, 차별화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참여하지만 이는 “연기”다. 이러한 연기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나에 대한 기억이 뒤바뀌며 겹겹히 쌓여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방해 받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라; 연기를 그만두자. 내가 느끼는 감정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연극으로 담아내자.

자 – 2년에 걸친 작업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Memory and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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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살해당한 햄릿의 아버지 유령이 복수를 요구하면서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자 햄릿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는다.

Remember thee?

Ay, thou poor ghost, while memory holds a seat

In this dsitracted globe. Remember thee?

Yea, from the table of my memory

I’ll wipe away all trivial fond records,

All saws of books, all forms, all pressure past,

That youth and observation copied there,

And thy commandment all alone shall live

Within the book and volume of my brain

Unmixed with baser matter.

(Hamlet, 1.5.95-104)

중세 시대에 성행하던 믿음 중 하나가 세계의 모든 기억이 한 곳에 저장된다는 것이였다. 처음 읽을 때는 무척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비웃었지만 막상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USB 혹은 백업 디스크에 저장하고 핸드폰 단축키는 기억할지언정 전화번호는 기억 못하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아주 틀린 얘기도 아닌듯. 당시 정황이 글, 인쇄술이 흔하지 않아서였는지 혹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다루는데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을 어느 물리적 장소에 저장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경과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Giotto 조또;; 종탑이 그러한 ‘하드 드라이브’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 진지하게 믿었던 듯 싶다.

셰익스피어도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위의 대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memory holds a seat in this distracted globe.”라 할 때 globe는 두뇌를 가르키므로 뇌 구석탱이에 고이 간직하겠다는 말도 되지만, 당시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연출되던 극장 이름이 Globe였음을 떠올리면 “얼래? 이거봐라?” 소리 나오게 되는 것이지. 즉, 연극이 진행되는 Globe라는 물리적 장소 안의 자리seat에 앉은 관객에 의해서 메세지/기억은 전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물리적 장소를 통해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햄릿의 믿음은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나타난다. 숙부인 클로디어스 앞에서 부왕이 살인 당하는 장면을 연극으로 재현함으로서 숙부의 기억을 되살리려 했던 장면 – 숙부의 얼굴 표정을 읽고 복수를 확신하는 장면 – 도 이에 해당된다.

기억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끌리고, 행동이 어떤식으로 기억에 남게 되는지는 한번쯤 누구나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래선지 일찍이 어린 아들을 잃고 – 아들 이름이 Hamnet이며 Hamlet 쓰기 3~4년전에 죽었다 –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필히 괴로했을 셰익스피어가 연극을 통해 담아낸 기억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p.s.

근데 조낸 비싸 아흙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