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6-20090927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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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형, 삼촌 2분 그리고 아버지 고등학교 동창분들과 1박 2일 설악산 다녀왔다. 올해는 회사에서 나눠주는 추석 상품권 액수도 줄어서 추석 선물을 몸-_-으로 떼우자는 심정으로 1박2일을 박은거지 뭐; 설악산 코스 중에서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대청봉 찍고 중청 대피소에서 하루 묶은 후, 아침 일찍 일어나 대청봉 일출 보고 공룡능선을 타고 쭉 내려가는 코스였다. 하지만 요즘들어 내가 무슨 마가 끼었는지, 올라갈 때마다 안개가 끼고 산행을 하는 족속 일정대로 되는 경우가 없는데 오늘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 안개낀 산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구름 사이에 드러난 등

구름 사이에 드러난 등

이번에는 중청 대피소에서 잘 곳을 확보하지 못해서 그림 하단에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분소까지 곧장 내려왔다. 이번에 대청봉에서 오색골로 내려오면서 느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내려오는 도중 랜턴을 잠시 껐더니 손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4시간, 그 것도 줄곧 돌계단길로 내려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어둠 탓이였을까,  시간의 흐름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 한점 불지 않으니 마치 커다란 방에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거꾸로 내려가는듯한 반복적 느낌이 날 지치게 만들었다.  한동안 내려가다 저 멀리 마을 불빛이 보이자 그 때서야 비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실은 랜턴 밧데리가 다 달아없어지만 어쩌지하는 우려 때문에 랜턴 불 빛을 반쯤으로 줄여놓고 내려오던 참이였다. 사람 눈은 어둠 속에서도 광자 4개의 희미한 빛을 볼 수 있도록 민감하다는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신의 뜻이 담겨있지 않는 것일까 제멋대로 추측해보았다.

이번 산행을 다녀오면서 막내 삼촌(넷째 작은 아빠)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막내 삼촌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시자면 고대 상대 졸업 후 철학에 뜻을 세워 고대 철학 대학원 다니시다가 베를린 대학에 가서 마르크스 연구하고 철학 박사를 따신 분이다.   유인촌이 TV 나오면 화내시고 주변에 기타가 보이기만 하면 칠 준비가 되었다면서 사포 (손톱 매만지는)를 갖고 다니시는 예술인이시다.  그러한 예술인 막내 삼촌께서 산 타는 내내 공기를 찍는다, 사람의 심장을 찍는다 등등 접사를 무척 많이 찍으셨다. 산을 내려오고 도토리 묵에 술 한두잔씩 오가는 도중, 막내 삼촌께서 사진기를 또 한번 꺼내셨다. 그리고는 여전히 카메라로 연거푸 플래쉬 터트리시길래 삼촌은 사진 찍으실 때 무엇을 포인트로 잡으세요? 라고 여쭈었다. 나는 말야, 그 사람의 심장을 찍어. 아 – 네, 하면서 넘어가려하는 찰나에 한마디 덧붙이신다. 나는 말야, (한잔 쭈욱) 생물학적 심장을 찍는단 말야. 네? 생물학적 심장요? 아 그럼, 생물학적 심장, 바로 그거야.

고개 갸우뚱. 내가 아는 생물학적 심장은 주먹만한 크기의 근육질 펌프이다. 동맥과 정맥이란 펌프를 통해서 날마다 쉬지 않고 혈액을 돌리는 펌프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심장을 찍는다니 이게 대체 무슨 해괴한 말일까. 막내 삼촌께서는 4년제 대학교육을 마치고 비록 생명과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철학 박사이시니 심장의 역할을 모르는 것은 아닐터. 하지만 나 역시 4년제 대학교육 받으면서 심장에 대해서 배웠는데 그럼 대체 어디서 의사소통이 어긋난 것일까? 더 여쭤보았지만 계속 돌아오는 답변은 생물학적 심장을 찍는다는 예술가의 답변. 그러더니 내게 카메라를 주시더니 자신의 생.물.학.적. 심장을 찍으라 하신다. 뒤에 있는 지지대에 양팔을 얹은 자세는 수술대 위에 올라간 환자 모습을 연상시키긴 했다만 여전히 삼촌의 생물학적 심장을 찍는 것은 무리였다.  삼촌, 심장을 찍을 수는 없어요.  아, 찍어보라니까.  그거 찍기 전에 삼촌이 먼저 돌아가실텐데요? 옆에서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셋째 작은 아빠께서도 웃기 시작한다.  심장을 찍는다면 뭐 영혼을 찍는다,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찍는다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 심장,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박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막내 삼촌은 생물학적 심장을 찍으라고 하신다. 찍어보니까 이건 심장을 찍은게 아냐. 그치, 내가 삼촌 심장을 찍었다가는 패륜아로  찍힐테니까, 하면서 속으로 반박했다.

술이 한참 들어간 후에 비로서 말씀하시길, 심장이란 피에 엉킴과 욕망 등을 담아낸다는 뜻이였다. 역시 뭔가 그럴싸한듯이 들렸지만 산에서 기분 좋게 내려와 술 취한 사람 얼굴 속에서 피에 엉킴과 욕망을 찾다니, 사막에서 우물 찾는듯한 이 느낌 – 우리 각자 단어가 무엇을 내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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