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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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은 겪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채 당하거나 당할 것을  알고 평생 대비해도 엿먹게 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첫 종이베임, 첫 이별, 그리고 첫 충돌.

도로 위에서 자전거 타다보면  열리는 차문에 한번 콰당 받게 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 적어도 모든 차가 스포츠카처럼 차문을 위로 비스듬하게 열게 되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당 시 나는 완만한 경사로 20분동안 땀 흘려야 오를 수 있는  언덕을 급경사 루트로 15분동안 땀 흘려서 올라와서 (…으응?) 무척 뿌듯한 마음으로 언덕을 내리꽂고 있었다.  도로 우편에 주차한 차가 아직 한창 주차하는 중이며 사람이 내리지도 않았다는 점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길 옆에 핀 코스모스들이 모네의 붓처리처럼 보일 때까지 속도를 내고 싶었을 뿐.

자 전거를 탈 때 남자는 허리! 외치듯이 허리와 복근의 힘으로 상체를 딱 지탱하고, 팔은 여자 어깨 위에 손 얹듯이 가볍게 놓을 뿐 (그래야 급할 때 방향 전환이 수월함) 이라는 설명을 수차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금 언덕을 올라오며 지친 나는 양 팔에 몸무게를 실어 앞으로 기대고 있었다. 내가 당시 깡이 조금 더 셌더라면  핸들마저 놓고 상체를 바람에 기댔을 지도 모른다. 너무나 바라고도 바랬떤 언덕을 막 정복한터라 조금이라도 더 기대고 싶었고 더 느끼고 싶었다.

0.5 초 후에 차문이랑 부딪힐 것을 알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부질없는 브레이크 잡기와 방향 전환에 바빴던 것 같다. 다행히도 방향전환은 좀 성공적이어서 정면충돌하는 상황은 나의 영웅적 노력에 의해서 가까스로 면하게 되었으나 오른쪽 엉덩이와 다리를 심히 긁고 길 반대편의 코스모스 수풀로 보기좋게 처박혔다.

당 황한 아주머니는 시민의식 뛰어난 독일국민답게 넘어진 나에게 말을 건넨다. 건넨 말 중에서 “alles” (독어로 모두) 단어만 들렸다.  ”Are you all right”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이 모든 것이 네 탓이야”를 말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게 내 잘못이야, 하지만 어찌할 수 없어.” 라고 말하려는 것이였을까? 조용하던 언덕 내리막길은 어디가고 시끄럽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집중한들 여자의 말을 알아들 수 있을리가  없잖아. 게다가 언어조차 내게 생소한 독어. 결국  먼지 툭툭 털고 일어나 마사루 원츄같은 표정으로 alles gut (독어로 다 괜찮아요) 한마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독어를 못한 설움, 자전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자책감 같은 감정들이 북받쳤다. 그러나 자전거를 안고 엉엉 울어주기는 커녕, 내 자신의 미숙함이 부끄러운 나머지 자전거를 버렸다.

그 때 나는 무척 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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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암실 속에서 대화”를 쓸 때 몇가지 염두에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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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제목 “암실 속에서 대화” 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연극의 모티브를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되었뜬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에서 일부 가져왔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촉각, 청각에만 의지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다. 그 어둠 안에서 내가 얼마나 약하고옆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지만, 또한 손을 놓는 순간 한없이 혼자이며 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하지만 정적인 경험이다.

암실 속에서 대화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자 한다. 똑같은 어둠일지라도 암실 – 이 곳의 암실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 – 안에는 무엇을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사람의 눈은 밫의 최소 단위인 광자 photon 4개만 있어도 이를 볼 수 있는 예민함을 갖췄기 때문이다.

-> to see; that of which I want.

#2

Diane Arbus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찍힌 대상의 흉직함이 놀라게 된다. Diane Arbus는 이들을 보면서 freak 즉, 병신이라 서슴치 않게 말한다. 놀란 나머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린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사진을 빼꼼히 바라봐도 여전히 병신들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나조차 얼굴 넓어보일까봐 엄두 못내는 정면샷을 이 병신들은 서슴없이 찍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병신 소리를 들으면 눈쌀 찌푸리면서 “왜 굳이 그런 말을 사용하나요?” 라고 반문하겠지만 하지만 Diane Arbus는 자신이 병신을 찍었음을 똑똑히 상기 시켜준다. 심지어 병신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거쳤고 그 것을 살아남았기 때문에 ‘귀족’이라고 말하기조차 한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 나는 병신을 사진기 앞에 서달라고 설득시켰다. 당신은 과연 병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병신이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병신을 보고 병신이라 말할 용기조차 없다. 그 것이 그들을 비하하는 이유라던가, 혹은 그 들을 쳐다보기에는 심성이 너무 약하던가 어떤 이유라든가 말야.  아니, 병신은 커녕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장대한 광경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뭐라고 느껴야할 줄조차 모르기 때문에 사진에 담는답시고 사진기 뒤로 숨는다.  뒤돌아서서 렌즈 탓이나 하면서 파노라마를 찍을 수 없는 똑딱이 사진기 탓을 하기도 한다.

단 한장의 사진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장벽이 느껴진다.  사진이란 세계의 일부를 독립적 객체로 떼어냈기 때문에 이러한 장벽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사진 찍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기조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 to see one must take a leap.

연극이 일어나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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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장소를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이미 연극 작품을 다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 말할 수 있다. 단, 쓰기 전에 앞서 몇가지 원칙이 있다. 예를 들어서 일상 회화에서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일부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대원칙이 있다. 따라서, 아이가 “아빠, 지금 무슨 일을 하시죠?” 라고 묻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극작가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일반 회화를 통해 전달할 수 없으며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좀처럼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도로나 광장이란 공공의 공간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기 때문에 회화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워진다. 두 연인이 영화 극장 안에서 친밀한 얘기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무대란 사적이면서 공적인 즉, 두 공간이 절충된 공간 – 반공반사- 일 필요가 있다.  즉, 외부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내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열어야 한다.

현재 “암실 속의 대화”는 암실과 거실, 2개의 공간으로 이뤄진다. 아직도 처음으로 암실에 들어갔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나는 대학 입학을 일찍이 결정 지어둔 상태라 남들 한창 고3 공부할 때 스페인어 초급, 사진 같은 ‘널널한’ 수업을 듣던 때였다. 처음 암실에 들어설 때 풍겨오는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에 ‘내가 남들 공부할 때 처놀면서 암거나 들쑤시고 다니니까 이 곳에서 벌을 받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랬을 뿐, 나중에는 몇시간이고 암실에서 일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나만의 공간 안에서 시간조차 잊고 일할 수 있던 것이 너무 좋았다. 하루는 세상의 빛과 차단되어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던 기억도 난다.

암실에 들어가면 사진 현상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준비 다 해놓은 상태에서 현상하기까지 약 10-15분정도 걸린다 ) 암실은 나만의 공간이다. 대부분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암실 안에서 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지만, 내 머리속은 어느 때보다 대화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 사진(recollection)과 내가 만들어내는 기억(remembrance)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부분적으로 익숙한 상대끼리 대화를 나눌 경우 마치 twitter처럼 별 내용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인도적 사진을 찍기 위해 인도에 간 사진작가 마냥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거창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아- 좀 더 다른 각도로 잡았아야 할텐데…” 후회하기도 한다.

실로 다이나믹한 공간이였다.

무엇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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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 위에서 극작가가 묻고 행동으로서 대답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질문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햄릿의 결정적 질문은 “과연 햄릿이 클로디어스 왕을 죽일 것인가?”이며 답은 “죽인다”이다.  그 외 내용,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최초로 우울증 혹은 정신분열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시달린 사람 등등 온갖 해석은 (햄릿을 완성한 후, 셰익스피어가 “실은 내가 말야… xx를 표현하고 싶었어” 라고 인터뷰한 적도 없고 일기장에 끄적여놓은 것도 없으니) 사람들의 추측일 뿐이다. 따라서 연극을 보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과연 햄릿이 클로디어스 왕을 죽일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이를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풀어나갔는지에 집중을 해야한다.

나는 비극을 좋아한다: 비극이 시작할 때는 산 꼭대기에 눈덩이가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한다. Act 5로 이뤄진 연극이라면 Act 1, 2 끝날 때 쯤되면 산 밑에 사는 평화로운 시민들이 어떻게 깔아뭉개질 것인지에 대해 스케치가 여러장 그려진다. Act 3가 끝날 때 쯤 되면, 커텐 뒤에 숨은 폴로니우스을 찔러죽인 후 자신의 복수가 성공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듯이 깊은 탄식을 내쉬며 “(내가) 영국에 가게 되었구나” 뱉을 타이밍이 되었고 이 때부터 연극은 단 하나의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인간에 다양한 면을 예리하게 파헤칠 수 있어서 난 좋다.

반면,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기어코 찾어내는 코메디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질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코메디는 삶을 똑바로 바라보기 보다는 관조적 입장을 취하면 취할수록 터득하게 되는 삶의 비밀이라고나 할까? 삶과 삶의 비밀, 이 두가지를 양손에 쥐면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참 시야도 폭 넓고 깊어질 것 같은데 그게 쉽지는 않다.

on dharma धर्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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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양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에서 무척 강조하는 개념 중 하나가 법(dharma धर्म)이다.  이는 정의로운 자가 밟아야 할 길, 또는 율법인 셈이다.  라마야나에는 ‘라마’라는 인물 – 그들에게 마치 성경의 예수님에 준하는 절대 선의 상징이자 비슈누 힌두신의 아바타인 라마 – 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 독자들에게 설명할 때 그 당위성을 dharma에서 찾는다. 왜 흰눈같이 순결한 라마가 추방 당해야만 하는지, 왜 라마는 그 와중에도 복수를 다짐하지 않고 온전히 복종해야하는지 이해 못하는 주변 인물들에게 dharma를 통해 극복하라고 거듭 강권한다.   ‘복수할 생각이면 3배로, 아니면 잊어라’를 신조로 삼았던 예전의 나로서 고통을 의무로서 묵묵히 견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설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힘든 여정이라고 한들, 극적인 결말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뿐 고된 삶이란 여정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려웠다. 생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물리적 폭력을 당함으로서 인간이 강해지지 않는데 뭔 개소리인가! 따라서 dharma란 우민들을 끊임없이 억압하기 위한 정신교육의 변형된 하나의 수단으로서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허나 이런 믿음이 인간관계와 사회 생활을 겪으며 점차 얼룩지기 시작하면서 고통이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라기 보다 상대방을 보다 가까이 안을 수 없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드는 멍 즉,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두각되기 시작했다.

고통이 이토록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시대 불변이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역사책을 읽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겠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국가의 안녕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비정한 (하지만 피눈물 흘린) 아버지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사마천 본인도 사형을 모면하기 위해 필요한 50만전이 수중에 없었기에 궁형을 (생식기 out)을 택했다.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며 불과 10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옆 사진처럼 죄인을 살려둔채 살점을 도려내는 “능지” 형벌이 이뤄졌다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서 고통을 극대화 시킨다). 따라서 고통을 일종의 범죄, 불의로 여기는 흐름은 생각 외로 근현대적 발상임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고통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무엇이 촉진했을까? 기원전 140년부터 1900년도까지 진행되다가 지난 100년 사이에 급속도로 바뀐 인간의 모습 중 어느 무엇과 인과관계를 지닐까? △A가 일어나는 동안 △B가 측정되었다고 해서 A~B의 연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약하지만 홉스봄처럼 역사를 통달하지 않은 이상, 인과관계를 일일이 추적한다는 것이 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니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한번 찔러본다.

지난 100년과 그 이전을 인구와 자본/자산 밀도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게 보이는 차이는 바로 도시화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화 현상을 가능케 한 것은 원동력은 (이동 및 통신 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고도화 된) 업무 분업화이다. 즉, 인류는 지난 100년간 업무 분업화를 고도화 시킴으로서 생존에 점차 유리하도록 자리를 잡았다. 주술사 대신 의사를 만들어서 유아사망율을 낮추는 등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듬으로서 전체가 혜택 볼 수 있는 방안을 꾀하였다. 대중이 억만장자를 만들어줬고 대중을 위한 영화 배우가 생기듯이 점차 학문의 흐름 또한 수사학, 인문학을 통해 개인의 완성보다는 대중으로 이뤄진 사회의 완성에 뭔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실용학이 점차 발전 되어왔다. 물론 개인과 사회는 늘 항상 상충하지 않으며  서로 보완해주는 부분 없지 않다.하지만 전반적인 큰 흐름을 봤을 때 우리는 업무 분업화를 통해서 각자가 마땅히 맡아야 할 일을 남에게 전담 시킴으로서 개인의 영역을 허물고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고도화 된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업무 분업화가 점차 확장되어 고통마저 남에게 전담 시켜주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아버지는 육아가 귀찮은 나머지 어머니에게 미루고, 각자 책상 주변을 청소하기 귀찮은 나머지 건물 청소부에게, 내 아들은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기에 귀하니까 남의 아들에게… 그리고 미처 아픔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못한 사람은 “왜 그러지 않았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하면서 아픔을 지닌 것 자체가 바보인마냥 그 사람을 비웃는다. 그 것이 연인간의 이별의 아픔이 되었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되었든 (머리로) 분리 시킬 수 있는 것을 미처 분리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경멸이 사회에 만연하다. 그 슬픔을 대처하는 방법보다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잊게 되어있어” “다른 사람을 만나” 식으로 대체하는 것만 가르칠 뿐, 이별의 아픔을 내 안 깊숙한 곳으로 받아들여 쇠약해지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같이 숨쉬고, 같이 지내면서 같이 견딘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만일 무언가 고통을 대신해줄 대체제마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비로서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애도를 표한다.

점차 고통에 대처하는 법은 현대 문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선조들을 가르켜 미개하다 혹은 문화적으로 뒤쳐졌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들이 우리보다 능숙하게 아픔을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과연 그들이 덜 미개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묻다보면 결국 다시 dharma 앞에 놓인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설사 대부분이 비웃더라도 내가 가야하는 길, 바른 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