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dharma धर्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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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양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에서 무척 강조하는 개념 중 하나가 법(dharma धर्म)이다.  이는 정의로운 자가 밟아야 할 길, 또는 율법인 셈이다.  라마야나에는 ‘라마’라는 인물 – 그들에게 마치 성경의 예수님에 준하는 절대 선의 상징이자 비슈누 힌두신의 아바타인 라마 – 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 독자들에게 설명할 때 그 당위성을 dharma에서 찾는다. 왜 흰눈같이 순결한 라마가 추방 당해야만 하는지, 왜 라마는 그 와중에도 복수를 다짐하지 않고 온전히 복종해야하는지 이해 못하는 주변 인물들에게 dharma를 통해 극복하라고 거듭 강권한다.   ‘복수할 생각이면 3배로, 아니면 잊어라’를 신조로 삼았던 예전의 나로서 고통을 의무로서 묵묵히 견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설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힘든 여정이라고 한들, 극적인 결말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뿐 고된 삶이란 여정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려웠다. 생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물리적 폭력을 당함으로서 인간이 강해지지 않는데 뭔 개소리인가! 따라서 dharma란 우민들을 끊임없이 억압하기 위한 정신교육의 변형된 하나의 수단으로서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허나 이런 믿음이 인간관계와 사회 생활을 겪으며 점차 얼룩지기 시작하면서 고통이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라기 보다 상대방을 보다 가까이 안을 수 없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드는 멍 즉,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두각되기 시작했다.

고통이 이토록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시대 불변이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역사책을 읽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겠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국가의 안녕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비정한 (하지만 피눈물 흘린) 아버지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사마천 본인도 사형을 모면하기 위해 필요한 50만전이 수중에 없었기에 궁형을 (생식기 out)을 택했다.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며 불과 10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옆 사진처럼 죄인을 살려둔채 살점을 도려내는 “능지” 형벌이 이뤄졌다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서 고통을 극대화 시킨다). 따라서 고통을 일종의 범죄, 불의로 여기는 흐름은 생각 외로 근현대적 발상임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고통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무엇이 촉진했을까? 기원전 140년부터 1900년도까지 진행되다가 지난 100년 사이에 급속도로 바뀐 인간의 모습 중 어느 무엇과 인과관계를 지닐까? △A가 일어나는 동안 △B가 측정되었다고 해서 A~B의 연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약하지만 홉스봄처럼 역사를 통달하지 않은 이상, 인과관계를 일일이 추적한다는 것이 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니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한번 찔러본다.

지난 100년과 그 이전을 인구와 자본/자산 밀도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게 보이는 차이는 바로 도시화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화 현상을 가능케 한 것은 원동력은 (이동 및 통신 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고도화 된) 업무 분업화이다. 즉, 인류는 지난 100년간 업무 분업화를 고도화 시킴으로서 생존에 점차 유리하도록 자리를 잡았다. 주술사 대신 의사를 만들어서 유아사망율을 낮추는 등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듬으로서 전체가 혜택 볼 수 있는 방안을 꾀하였다. 대중이 억만장자를 만들어줬고 대중을 위한 영화 배우가 생기듯이 점차 학문의 흐름 또한 수사학, 인문학을 통해 개인의 완성보다는 대중으로 이뤄진 사회의 완성에 뭔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실용학이 점차 발전 되어왔다. 물론 개인과 사회는 늘 항상 상충하지 않으며  서로 보완해주는 부분 없지 않다.하지만 전반적인 큰 흐름을 봤을 때 우리는 업무 분업화를 통해서 각자가 마땅히 맡아야 할 일을 남에게 전담 시킴으로서 개인의 영역을 허물고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고도화 된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업무 분업화가 점차 확장되어 고통마저 남에게 전담 시켜주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아버지는 육아가 귀찮은 나머지 어머니에게 미루고, 각자 책상 주변을 청소하기 귀찮은 나머지 건물 청소부에게, 내 아들은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기에 귀하니까 남의 아들에게… 그리고 미처 아픔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못한 사람은 “왜 그러지 않았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하면서 아픔을 지닌 것 자체가 바보인마냥 그 사람을 비웃는다. 그 것이 연인간의 이별의 아픔이 되었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되었든 (머리로) 분리 시킬 수 있는 것을 미처 분리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경멸이 사회에 만연하다. 그 슬픔을 대처하는 방법보다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잊게 되어있어” “다른 사람을 만나” 식으로 대체하는 것만 가르칠 뿐, 이별의 아픔을 내 안 깊숙한 곳으로 받아들여 쇠약해지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같이 숨쉬고, 같이 지내면서 같이 견딘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만일 무언가 고통을 대신해줄 대체제마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비로서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애도를 표한다.

점차 고통에 대처하는 법은 현대 문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선조들을 가르켜 미개하다 혹은 문화적으로 뒤쳐졌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들이 우리보다 능숙하게 아픔을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과연 그들이 덜 미개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묻다보면 결국 다시 dharma 앞에 놓인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설사 대부분이 비웃더라도 내가 가야하는 길, 바른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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