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암실 속에서 대화”를 쓸 때 몇가지 염두에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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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제목 “암실 속에서 대화” 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연극의 모티브를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되었뜬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에서 일부 가져왔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촉각, 청각에만 의지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다. 그 어둠 안에서 내가 얼마나 약하고옆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지만, 또한 손을 놓는 순간 한없이 혼자이며 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하지만 정적인 경험이다.

암실 속에서 대화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자 한다. 똑같은 어둠일지라도 암실 – 이 곳의 암실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 – 안에는 무엇을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사람의 눈은 밫의 최소 단위인 광자 photon 4개만 있어도 이를 볼 수 있는 예민함을 갖췄기 때문이다.

-> to see; that of which I want.

#2

Diane Arbus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찍힌 대상의 흉직함이 놀라게 된다. Diane Arbus는 이들을 보면서 freak 즉, 병신이라 서슴치 않게 말한다. 놀란 나머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린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사진을 빼꼼히 바라봐도 여전히 병신들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나조차 얼굴 넓어보일까봐 엄두 못내는 정면샷을 이 병신들은 서슴없이 찍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병신 소리를 들으면 눈쌀 찌푸리면서 “왜 굳이 그런 말을 사용하나요?” 라고 반문하겠지만 하지만 Diane Arbus는 자신이 병신을 찍었음을 똑똑히 상기 시켜준다. 심지어 병신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거쳤고 그 것을 살아남았기 때문에 ‘귀족’이라고 말하기조차 한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 나는 병신을 사진기 앞에 서달라고 설득시켰다. 당신은 과연 병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병신이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병신을 보고 병신이라 말할 용기조차 없다. 그 것이 그들을 비하하는 이유라던가, 혹은 그 들을 쳐다보기에는 심성이 너무 약하던가 어떤 이유라든가 말야.  아니, 병신은 커녕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장대한 광경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뭐라고 느껴야할 줄조차 모르기 때문에 사진에 담는답시고 사진기 뒤로 숨는다.  뒤돌아서서 렌즈 탓이나 하면서 파노라마를 찍을 수 없는 똑딱이 사진기 탓을 하기도 한다.

단 한장의 사진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장벽이 느껴진다.  사진이란 세계의 일부를 독립적 객체로 떼어냈기 때문에 이러한 장벽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사진 찍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기조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 to see one must take a 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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