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ial network, the movie

Standard

Facebook이란 회사를 두고 세 사람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과정을 찍은 the social network 영화를 봤다.

단상:

첫번째, 외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 역시 잘 나가는 아이들 사이에 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던 아픔과 배경이 된 외국 사회의 배타적 성향을 facebook과 영화 둘다 적절하게 담았다. 한국 사람 정서상 평소 모르고 지내는 같은 반 아무개가 ‘일촌 신청’할 경우 약간 어색할지라도 미안한 마음에 수락할 것이라 예상되지만 같은 상황에서 외국 애들은 who the fuck is this dinky nerd? 그리고는 사뿐히 거절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상상된다.  그런 배타성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아파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facebook의 기능은 물론, 사이트 전체 밑바탕에 깔려있다.  헤밍웨이가 작가의 필수 조건으로서 ‘뼈저리도록 서러운 어린 시절’을 꼽았듯이  페이스북의 필수 조건은 ‘외로운 학창시절’ 였다. 그런 뿌리 깊은 바탕이 부족했기 때문에 페이스북 기능을 이미 몇년전에 구현했던 싸이월드는 여대생들 와플 리뷰와 셀카 모음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걷는 것 아닐까.

두번째, 소셜 네트워크가 재미 있으려면 참여자 즉, 사용자가 흥미로워야 한다. 이건 어떤 의미로 예전 nhn이 고민하던 문제와 얼추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흥미로운 컨텐츠 (=남들이 검색할) 자체를 만드는데 참여하지 않으니  nhn이 나서서  컨텐츠를 제작하고 유저로 하여금 제작할 수 있는 환경(카페, 블로그, 미투데이 등등) 을 억지루 만든다.  반면, 의사 표현과 컨텐츠 제작 즐기는 서양 사회라는  질 좋은 토양에서 시작된 구글은 검색에 치중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싸이월드는 사람들이 흥미로운 내용을 안 올리니까 억지루 첫페이지에 뉴스 기사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 없는지 알 수 있는 35가지 방법’  같은 반복성 컨텐츠가 방류되기 시작하니 컨텐츠의 농도가 지속적으로 얕아지는 악순환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Facebook은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다니면서 뭘 like하는지 표시하니까  facebook 안에 담겨진 컨텐츠의 농도가 짙어지면 짙어지지 더 얕아지지는 않는다.

p.s. 1. 누가 흥미로운 사용자이며 누구는 흥미롭지 않다는 판단은 순전히 사업적 의사 결정이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p.s. 2. (i should probably shut up right about now)

 

마찰, 고집

Standard

마찰과 연속된 싸움: 자전거를 타는 내내 드는 생각이다. 타이어와 지면, 시속 20km 이상 내면서 발생되는 바람과 나, 모든게 마찰이다. 굳이 자전거 같이 스피드 내는 종목이 아니라 등산처럼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운동 또한 마찰을 이겨나가는 것 아니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같은 마찰이라도 자전거와 등산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둘 다 정신없이 뒤바뀌고 형식적 세상과 노선은 다를지라도 등산은 산고양이의 야성적 일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자전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연어 같은 고집에 가깝다.

이 고집은 자신이 생활하는 곳, 출근길에서부터 시작한다. 추운 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부딪히게 될 위험 요소들 – 자전거 도로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울퉁 불퉁한 도로 상태, 난폭한 운전수, 스마트 폰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한치 앞을 못 보고 도로 건너는 중고등학생들  – 이와 같은 여러가지 위험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이성적 판단은 “얌전하게 남들처럼 전철타고 출근해라” 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멀고 어려운 길을 택하려는, 그런 고집이다. 생전 보지 못한 Eddie Merckx (사이클링 명선수)가 70년대에 입던 Molteni 운동복 혹은 30년전 클래식 자전거 프레임이 깔끔하고 멋있다면서 윗돈 얹어 수집하려는, 그런 고집이다. 반면 아직까지 등산 다니면서 “산행은 송림 수제 등산화를 신어야 제맛이지!” 하는 사람 보지 못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그렇게 바보스럽다.

배고픔

Standard

어느덧 배가 고픈 느낌 자체를 원하게 된다.  이 것을 느껴본 사람은 점심 시간이니까 마지 못해 떠 먹던 백반 따위는 잊는다.

자전거 일주를 마치면 근육들이 요동 치기 시작한다. 우선 안장에서 내려오면 허벅지와 글루트가 파르르 떨며 지랄 발광한다. 곧이어 20대니까 심장마비 걱정 없다며 혹사 시킨 심장이 꾀병 피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느낌은 만방에 들리도록 꺼이 꺼이 목놓고 우는 밥통: 이때는 평소 칼로리 계산해서 조심스레 먹던 Reese’s 초콜렛를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넣는다. 청계산 밑 옛골 토성이 구수한 오리 구이 냄새로 허기진 등산객을 감싸는 행위는 사기에 가깝지만 자전거 도로 옆에 맥주집 역시 이에 못지 않다.  술 약한 나조차 한병 더! 외치면서 남은 술 방울을 마치 백일 휴가 나온 군인 여자친구 젖무덤 빨듯이 남김 없이 핥고 또 핥고… 아쉬운 듯이 또 한번 쳐다 보고…

정말 고픈 배다.

율곡 이이의 자경문

Standard

1. 입지(立志)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져야 한다.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2. 과언(寡言)

마음이 안정된 자는 말이 적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은 말을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제 때가 된 뒤에 말을 한다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다.

3. 정심(定心)

오 래도록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마음을 하루 아침에 거두어 들이는 일은, 그런 힘을 얻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마음이란 살아있는 물건이다. 정력(번뇌 망상을 제거하는 힘)이 완성되기 전에는 (마음의) 요동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마치 잡념이 분잡하게 일어날 때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싫어해서 끊어 버리려고 하면 더욱 분잡해지는 것과 같다. 금방 일어났다가 금방 없어졌다가 하여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같은 것이 마음이다. 가령 잡념을 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 ‘끊어야겠다는 마음’은 내 가슴에 가로질러 있으니, 이것 또한 망녕된 잡념이다.  분잡한 생각들이 일어날 때에는 마땅히 정신을 수렴하여 집착없이 그것을 살필 일이지 그 생각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오래도록 공부해나가면 마음이 반드시 고요하게 안정되는 때가 있게 될 것이다. 일을 할 때에 전일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또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이다.
4. 근독(謹獨)=신독사상

늘 경계하고 두려워 하며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생각을 가슴 속에 담고서 유념하여 게을리함이 없다면, 일체의 나쁜 생각들이 자연히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악은 모두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음’에서 생겨난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간 뒤라야 ‘기수에서 목욕하고 시를 읊으며 돌아온다.’는 의미를 알 수 있다.

 

5. 독서(讀書)

새 벽에 일어나서는 아침 나절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밥을 먹은 뒤에는 낮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는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일이 없으면 그냥 가지만,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생각을 하여, 합당하게 처리할 방도를 찾아야 하고, 그런 뒤에 글을 읽는다.   글을 읽는 까닭은 옳고 그름을 분간해서 일을 할 때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에 일을 살피지 아니하고, 오똑히 앉아서 글만 읽는다면, 그것은 쓸모 없는 학문을 하는 것이 된다.

 

6. 소제욕심(掃除慾心)

재 물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과 영화로움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은 비록 그에 대한 생각을 쓸어 없앨 수 있더라도, 만약 일을 처리할 때에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처리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도 또한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이다. 더욱 살펴야 할 일이다.

 

7. 진성(盡誠)

무 릇 일이 나에게 이르렀을 때에, 만약 해야 할 일이라면 정성을 다해서 그 일을 하고 싫어하거나 게으름 피울 생각을 해서는 안 되며, 만약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일체 끊어버려서 내 가슴 속에서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마음이 서로 다투게 해서는 안 된다.

 

8. 정의지심(正義之心)

항상 ‘한 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더라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슴 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9. 감화(感化)=감이수통

어 떤 사람이 나에게 이치에 맞지 않는 악행을 가해 오면, 나는 스스로 돌이켜 자신을 깊이 반성해야 하며 그를 감화시키려고 해야 한다.  한 집안 사람들이 (선행을 하는 쪽으로) 변화하지 아니함은 단지 나의 성의가 미진하기 때문이다.

10. 수면(睡眠)

밤 에 잠을 자거나 몸에 질병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눕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비스듬히 기대어 서도 안 된다. 한밤 중이더라도 졸리지 않으면 누워서는 안 된다. 다만 밤에는 억지로 잠을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낮에 졸음이 오면 마땅히 이 마음을 불러 깨워 십분 노력하여 깨어 있도록 해야 한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리 누르거든 일어나 두루 걸어다녀서 마음을 깨어 있게 해야 한다.

11. 용공지효(用功之效)

공 부를 하는 일은 늦추어서도 안 되고 급하게 해서도 안 되며,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다. 만약 그 효과를 빨리 얻고자 한다면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늦추지도 않고 서둘지도 않으면서 죽을 때까지 해나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고 탐욕을 부린다면) 부모께서 물려주신 이 몸을 형벌을 받게 하고 치욕을 당하게 하는 일이니, 사람의 아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