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진정성,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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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활동하던 봉사 시설이 대안학교로서 인정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두번 감사했다. 첫번째는 학업을 미처 마치지 못한 아이들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기반이 뒤늦게나마 갖춰졌기에 감사했고 두번째는 내가 임시 교사로서 한계에 부딪치고 고민하던 차에 짐이 덜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공대생 친구들이 주도적으로 기능 또는 제품 만들 노력은 안하고 그저 어떻게 벤처 회사 찾아 초창기 투자자로 이름 올릴 수 있을까에 궁리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지던 참이였다. 그 것마저 모잘라 인터넷상으로 누가 가장 먼저 안타까운 사람 찾아내서  retweet하고, 흔해빠진 자신의 견해를 들어줄 virgin ear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불우한 이들을 위해 마음 한켠을 비운 정도면 괜찮아, 합리화 시키려는 내 자신이 가장 역겨웠다. 거울에 반사되는 나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어느 주말에 나의 오랜 외국 생활 경력을 정리한 이력서를 사회 복지사에게 보냈고 얼마되지 않아 임시 영어 교사직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채용과 달리 수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영어 배워서 해보고 싶은 것 3가지를 정리하라고 준 A4 용지를 일주일 후 깨끗하게 그대로 가져왔다.  항상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한 습관 탓인지 지나치게 욕심 많아 훗날 인류에게 해가 될 녀석을 가르칠 자신은 있을지언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뱃속의 아가가 건강히 크기 바란다는 순둥이 예비 엄마들은 자신이 없었다.  내가 5학년 때 하루에 챕터 5장씩 풀어 제끼고 단어 50개씩 외우던 책을 한달동안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대신 쫙쫙 풀어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니 지켜봐야 한다면서 급한 마음 억누르기 급급했다. 보며 안타까웠다.  지난 수업 때 나온 단어 중 하나라도 기억하면 억지로라도 칭찬 해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타이르면서 예비 엄마들의 공부 습관이 기적적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막판에는 포기에 가까운 심정이였다.
때마침 시설이 대안 학교로 승격 되면서 나의 노력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두번 쉬었다. 첫번째 한숨은 나라는 한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는 사실에 안심한 큰 한숨이였으나 두번째 한숨은 나라는 한 개인을 위해 고개 돌린채 몰래 내쉰 작은 한숨이였다.  나의 노력은 실패였다. 봉사라는 단어를 차마 쓸 수 없다 – 아마 그들은 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부터 성과를 내야겠다는 무언의 압박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두려운 상상마저 하고 있다. 학업 마치기도 전에 집단 이기주의적 학부모들 등쌀에 떠밀리고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미혼모를 챙기자, 애 낳기 싫다는 여자들 억지로 달래지 말고 미혼모를 챙기자, 이런 나의 이성적 판단과 강한 의지보다 미혼모들이 진정 필요한 것은 따스한 시선이 아니였을까.  아니, 애초 시작할 때 그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줘야 한다는 것조차 알고 있었으나 여전히 내게 그들은 여전히 학업 성과가 지지부진한 학생들이였던 것이지 예비엄마들로서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에이, 그런 이유일리가. 수동적인 교육 환경에 처하지 않아서? 그런 핑계 따위. 내가 차가운 도시 남자라서? 지금이 차도남 개드립 칠 때냐…
어쨌든 봉사하면서 채워지길 바랬던 2010년은 이렇게 나의 가슴에 구멍을 남겼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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