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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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인류가 느꼈던 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 위대함을 나타내는 상징물, 신의 형상물을 만들었다면 선형적 글은 (성경, 과학적 방법론 등등) 모호한 상징물이 풍기는 아우라를 빼앗거나 파괴하였다. 하지만 우상 숭배 혹은 오캄의 면도날라는 판단 기준을 통해 상징물을 억눌러온 선형적 글과 문자가 오히려 19세기에 발명된 사진, 비디오 매체에 의해 한낱 구시대 유물로 전락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Photogenic 소위 사진 잘 받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보면 처음에는 나보다 멋있거나 이쁜 사람이란 점에 무력함을 느끼고, 이러한 미모를 감상한 사람이 모델 본인과 나를 제외하고도 사진작가가 있음에 거리감이 느껴지고 이 사진이 복제 되어 여기저기 퍼지는 것은 마치 쓰나미 밀려오듯이 막을 수 없는 현상황이 필연이라 생각하게 된다. 인물 사진이 아닌 다른 사진 보더라도 내가 뭘 느껴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기 때문에 무력함, 거리감, 필연은 여전하다. 그래서 나는 사진 앞에 서면 위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이게 되며 위축 되는 경향이 있다.
상징이 풍부한 희곡, 때로는 말씀 그 자체에만 충실하라며 내려주신 성경을 붙잡고 위로를 찾으면 앞서 언급한 거리감, 무력함은 어찌 해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필연성’을 어찌 해볼바는 없는 것 같다. 그리스 비극은 주변에서 보기도 어렵고, 심판의 날 외에는 요즘 대세를 거스를만한 강력한 드라이브 걸어줄 구절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는데 언제 심판의 날이 올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조만간 대세를 따르지 못해 사진맹, 비디오맹 소리 듣게 될 날이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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