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 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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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래 잘부르는가가 최근 많은 이들의 관심사이지만 내가 즐겨 가는 게시판에서는 “누가 말 잘하는가?” 질문에 손석희다, 섹드립 최강자 신동엽이다, 사귈 때부터 말싸움을 이긴적 한번 없는 아내다 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내 경험상 말 잘하는 사람은 입 다물어야 할 때 입을 다무는 사람이다. 주변 누군가가 쓸데 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곤혹을 치뤄본 사람이라면 수긍할 것이다.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하는 이유에는 지적 능력을 뽐내고 싶어하는 경우,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경우, 새로운 가씹거리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더렵혀지지 않은 귀를 찾아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경우 등등 많고도 많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 이유는 전달할 수 없는 말,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사고의 범주를 벗어나는 무언가를 앞에 두고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표출 못하는 답답함을 당장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이든 – 추후 결과에 대한 생각 없이 – 취하는 것이 너무나도 약하다면 약한, 사회적 동물이라면 사회적인, 인간적이라면 인간인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말로만 온전히 전달되기 힘든 세계관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의지한다는 기독교인이 침묵을 지켜야 할 때 남들만큼도 입을 닫지 못하고 세치 혀를 놀리는 작태는 필히 비판 받아야 한다. 바야흐로 기독교에 (철학으로 치자면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급의 강력한 (이 역시 비트겐슈타인이 저서를 통해 사용한 단어인) ‘사실’이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의 부재가 God is a salesman처럼 자극적 상업적 문구와 (이제는 널리 사용되어 친근하기까지 한) “하나님은 사랑이다”와 같은 허언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이 왜 허언인가를 이해하기 앞서 도움되는 말 한마디:

Young man, in mathematics you don’t understand things. You just get used to them.

– John Von Neumann (Reply to sayer of “I’m afraid I don’t understand the method of characteristics.” )

성경 구절을 뜻을 이해하고 암송하기 전, 우선 성경 자체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사랑의 표현 방식과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식은 다르기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단지 하나님의 표현 – 구약 39편 신약 27편에 걸쳐 나타난 하나님의 표현 – 방식에 익숙해질 뿐이다. 의자를 텅빈 방 한 가운데 떡하니 놓으면 의자로서 제 구실을 못하겠거니 내가 아무리 의자라고 주장한들 의도가 전달 될 수 없기에 실속 없는 말 즉, 허언이다. 의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자 높이와 사람의 다리 길이가 얼추 비슷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손 높이에 맞춰 제작된 탁자 옆에 의자가 놓여있어 앉는 기능을 수행할 때 비로서 의자가 된다. 이런 문맥적 사용 패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도자 삘에 꽂히는대로 성경 구절 몇마디 녹음하여 틀어놓고 ‘사랑의 역사’가 이뤄지도록 방관하는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허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가 허언인 또 다른 이유는, 사랑이라 성급하게 규정 지음으로서 다른 가능성을 빼앗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출애굽기 (구약 중에서 앞부분)에 밝힌바 있다. 애굽(이집트)에 가서 고통 받는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명 받은 모세가 대놓고 가기 싫다고 말은 못하겠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하나님의 특성(?)을 얍삽하게 이용해서 안 가려고 물어본다:

And Moses said unto God, Behold, when I come unto the children of Israel, and shall say unto them, The God of your fathers hath sent me unto you; and they shall say to me, What is his name? what shall I say unto them? (Exodus 3:13)

이에 하나님은 답하시길, (번역이 무척 까다롭지만 시도하자면) 하나님이 밝히시길, 나는 존재다.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Exodus 3:14)

“나는 존재다”는 우리(= ~하나님)는 존재물 (= ~존재)이다를 함축하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른바, 규정되지 않으며 한계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도 아니지도 않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이지도 전지전능 아니지도 않다. 우리는 하나님을 규정지을 수 없음을 성경 초창기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xx이다” 는 허언이다.

허언을 삼가하자. 그 것이 말 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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